“10월3일은 민주당이 수권 의지를 확인하는 날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 서민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다.” 민주당 10.3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손학규 신임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이 같은 슬로건을 곱씹으면서 차기 대권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결국 차기 집권 가능성을 엿보려면 민심에서 앞선 인물을 당의 얼굴로 세워야 한다는 당내 요구는 춘천에서 2년간 칩거한 그를 대표로 끌어올렸고, 이로써 손 대표는 대권가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특히 호남 기반의 견고한 지역 벽을 뚫고 당당하게 당심(黨心)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지긋지긋한 정체성 시비를 털어내고 야권의 ‘적통’으로 안착하게 됐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손 대표는 70년대 서울대 재학 중 반독재 투쟁을 했던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서, 유신 체제 종식 후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손 대표를 정계로 이끈 것은 취임 후 전방위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던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서, 문민정부가 출범한 93년 광명 보궐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광명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이후 당내 소장개혁파의 리더로 당 대변인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로 당선되면서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경기지사 시절 거리로 따지면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만큼 외자유치를 위해 세계를 누볐던 일화는 유명하다. 경기지사에서 물러난 뒤 대권 도전을 노렸지만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한나라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당을 결행, 정치인생의 최대 전환점을 맞았다. 이어 구 여권의 대권 레이스에 합류, 민심의 우위에 기댄 대세론으로 바람몰이에 나섰으나 취약한 조직 기반에 발목이 잡히면서, 이번 전당대회에서 2등으로 당선된 정동영 최고위원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후 손 대표는 2008년 초 대선 참패의 상처로 허덕이던 당에 구원투수로 투입돼 대통합민주신당의 과도기 대표로서 총선을 진두지휘하면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 출마로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패해 또다시 고배를 들었다. 이어 2008년 7.6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정세균 전 대표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춘천으로 내려갔다. 지난해 10월 수원 재보선 당시 그의 출마가 점쳐지기도 했지만 측근인 이찬열 의원에게 자리를 양보한 뒤 자신의 선거운동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찬열을 당선시켰다. “이명박 정부 폭정에 맞설 것” 대여 강경기조를 예고 그러나 그는 그 뒤에도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칩거를 이어가다 지난달 15일 당권 도전 의사를 공식화하며 전격 상경했다. 손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선거 기간 내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전력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당이 다를 때부터 ‘햇볕정책’을 지지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적통임을 인정받았다”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따라서 이제 ‘실천의 진보’를 내세운 당내 개혁으로 수권정당을 만들겠다는 그의 야심찬 도전이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되고 있다. 대중 지지도에서 앞선 인물을 당의 간판으로 내세워야 차기 집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야권의 기대를 안고서다. 비호남 출신 간판을 내세워 지역당 이미지를 씻어내자는 ‘전국 정당’의 꿈도 손학규호에 실려 있다. 무엇보다 수도권 출신인 그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낸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취약한 조직 기반의 한계를 딛고 ‘손학규 바람’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진앙지가 됐다. 따라서 손 대표는 수권정당의 비전을 제시하고 제1야당의 존재감을 높여 집권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손 대표의 취임 일성은 “진보정당과 연대-연합하는 전략을 펼쳐 진보와 개혁에 중도까지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통해 이기는 정당을 만들어 나가겠다”였다. 진보 노선을 유지하되 ‘실천적 진보’ ‘더 큰 진보’를 내세워 중도층까지 껴안아야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이른바 ‘삼합 필승론’이다. 대여 관계에서 손 대표가 대화와 타협을 기조로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정통성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선명성을 강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손 대표는 당선 후 인터뷰에서 “서민생활을 위해 협조할 것은 적극 협조하되 이명박 정부가 서민생활을 외면하고 남북관계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폭정에 대해선 싸워나가겠다”고 말해 대여 강경 드라이브를 예고한 바 있다. 비주류의 대약진과 주류의 몰락으로 압축된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 내 권력지도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비주류는 정동영-천정배-박주선-조배숙 최고위원 등 본선에 진출한 전원의 동반 입성을 성사시킨 반면, 주류 쪽에서는 정세균 최고위원의 직계인 486 최재성 의원이 낙선하면서 정세균 최고위원 혼자 비주류에 둘러싸이는 전면적 세력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이인영 후보도 486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세균 최고위원에는 거리를 둬 온 편이다. 벌써부터 당 일각에선 손 대표와 정세균 최고위원의 지지기반이 겹친다는 점에서 정 최고위원측 인사들 일부가 손 대표 측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손 대표가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중간자적 위치를 취해온 만큼 최소한의 계파 간 힘의 균형은 이뤄지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수권 태세를 다질 손학규판 개혁이 시동을 걸었지만 지도부 인사간 권력 분점이 이뤄지는 순수 집단지도체제 하에서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라이벌인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이 나란히 지도부에 포진, 팽팽한 긴장관계가 구축된 데다 여전히 호남 중심의 당내 기득권 구조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21% 득표로 당 대표에 당선된 리더십이 어느 정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대 위에 오른 ‘빅3’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대선 전초전을 방불케 하는 신경전이 펼쳐질 공산도 적지 않아 보인다. 당장 정동영 최고위원 등 비주류 그룹이 부유세 신설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요구 등 선명성 강화를 들고 나오며 손 대표가 표방한 ‘중도 포용론’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점쳐져 노선 투쟁도 격화될 조짐이다. 그리고 손 대표로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당내 계파 간 이해관계를 풀어내면서 집단지도체제라는 실험을 무리 없이 완수해야 할 리더십의 시험대에 서게 된 셈이다. 결국 손학규호가 당 안팎의 산적한 장애물을 넘어 안착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정권교체를 희구하는 민주당의 미래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차기 당내 대권경쟁 국면에서 ‘정치인 손학규’의 운명도 여기에 달렸다. 손학규 “축제는 끝났다. 낮은 자세로 헌신하겠다” 손 대표는 취임 뒤 첫 인사차 7일 부산 출신의 대표적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인사인 김영춘 전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발탁했다. 당초 지역적 보완을 위한 영남 인사의 기용은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으나 그동안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던 김 전 의원의 낙점은 ‘깜짝카드’라 할 수 있다. 손 대표는 후속 당직 인선을 놓고 막바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탕평인사 기조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운데 주요 포스트는 직할 체제로 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표직을 원활히 수행하려면 직할체제가 필요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선 1년 전 대권-당권 분리’ 원칙에 따라 손 대표의 임기는 실질적으로 1년2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손 대표가 2012년 대선에 도전하려면 내년 12월초쯤에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쇄신연대 등 당 비주류 인사들 사이에서도 “대표 직계를 주요 당직에 기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손 대표에게 중요한 자리는 사무총장·대변인이다. 사무총장에는 3선의 김부겸·정장선 의원이 거론된다. 두 사람은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를 적극 지원했다. 의정활동 평가나 선수(選數) 면에서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게 당내 평가다. 대변인으로는 재선의 우제창 의원, 원외 인사인 차영 캠프 대변인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이들 외에 초선인 전혜숙 의원의 이름도 나온다. 대표 비서실장에는 초선의 이춘석·이찬열 의원과 함께 재선의 양승조 의원이 거명되고 있다. 정책위의장은 정세균 전 대표와 가까운 전병헌 의원이 계속 맡지 않겠느냐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 전 대표가 임기 만료 두 달 전에 전 의원을 기용했기 때문에 화합을 고려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대표가 임명하는 지명직 최고위원으론 영남 출신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486 인사들의 추가 기용 가능성도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손 대표에 이어 김영춘 전 의원도 과거 한나라당에 몸담은 전력이 있어, 자칫 야당의 선명성이 희석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