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4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금리를 2.25%로 동결하기로 의결했다. 김중수 금통위원장은 기자회견의 모두발언에서 금리동결에 대해 “앞으로 주요국 경기 및 환율의 변동성 확대 등이 세계 경제는 물론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환율전쟁’이라고 금통위가 금리동결의 이유를 밝힌 것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 여야 의원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넘어서 “서민 경제를 외면한 한국은행의 직무유기”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게다가 지난 20일 중국이 갑작스레 금리 인상을 발표하면서, 금통위의 결정에 대한 비판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7월 0.25%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 금통위는 이후 수차례 금리 인상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왔다. 이에 올해 안에 다시 한 번 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김중수 총재 “환율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측이 무색하게도 10월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했고, 올해 안에 더 이상의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금통위는 14일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 “주요국의 경기 회복세 둔화 가능성, 전 세계적 환율 여건 변화, 유럽 국가 재정 문제 등이 한국 경제 성장의 하방 리스크(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새로운 ‘환율 전쟁’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금통위의 이러한 발언은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자국의 수출 등 경기 부양을 위해 환율 방어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내외 금리 차의 확대로 외국인 증시 투자자금의 유입이 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하락하고, 이는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총재는 이와 관련해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대외 여건이 중요하다"며 "환율 전쟁은 경제의 하방 위험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총재는 “물가안정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도 함께 밝혀 금리 인상에 대한 약간의 가능성은 남겨뒀다. 김 총재는 "농산물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아졌고 앞으로 경기 상승이 이어지면 수요 측면의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3% 안팎의 물가 상승률이 계속될 것이므로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살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단지 대내외 여건이 굉장히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 여부는 그때그때 판단할 것"이라며 "연내에 올릴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편, 이날 금통위부터 위원들의 만장일치 여부를 공개하기로 한 가운데, 김 총재는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물가불안 확산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환율 전쟁 등 대외 불안 요인을 고려해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자산거품-통화정책 무력화 등 부작용 예상돼 금통위의 금리 동결 방침이 발표되자, 이를 접한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자산거품’의 발생 가능성이다. 자산거품은 자산 가격이 수요-공급 원리를 벗어나 적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돈값이 싸면 소비자와 기업들이 돈을 빌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나서면서 자산가격 급등을 일으켜 거품을 만들 수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경제활동보다 금리가 굉장히 낮은 수준이 지속할 때 거품이 생길 수 있다”며 “지금처럼 계속 저금리로 가면 거품이 생길 위험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아직은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등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에 이 전문가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아직 큰 데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자금 흐름이 뚜렷한 방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며 “어느 한순간에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스스로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현재 금리처럼 더 내릴 여지가 없는 금리 수준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일본처럼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금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경기를 조절하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금통위의 의견에 반대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이번 금리동결 때문에 앞으로 경기가 둔화하면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결국 통화정책의 효용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금통위가 통화정책 수행에 가장 중요한 ‘신뢰’를 저버렸다”며, “그때그때 달라지는 바깥 사정을 구실로 삼는다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정책 예측에 혼란만 가져올 것”이라고 금통위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이 이보다 더 우려를 표하는 것은 바로 ‘인플레이션 부메랑’이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로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치인 3%를 웃돌았다. 해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해외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지고 있어 국내 물가상승 압력은 더욱 커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초저금리에 이자가 워낙 싸다 보니 소비자들이 빚을 내면서 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9년 기준 153%로 영국(161%), 호주(155%)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이자 부담으로 고통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들이 충격을 감당할 여력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국내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금리가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없는 만큼 빠르게 정상화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동결, 국감현장에서도 격렬한 논쟁 불러 금리동결은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여야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18일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는 ‘금리동결’을 둘러싸고 김중수 한은 총재와 여야 의원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특히 이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금통위가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동결함으로써 서민 경제를 외면했다”며 금리동결을 비판했다. 여야가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이었다. 국감 현장에서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한은은 최근 소비자물가와 수입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자극받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기를 포기하고 환율 방어에 매달리는 바람에 서민들만 물가 상승의 희생양이 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김 총재가 여러 공식석상에서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정상화를 시사하면서도 금리를 동결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 시장에 충격을 주고 스스로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성식 의원도 “한은과 금통위가 자승자박(自繩自縛: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 것)의 늪에 빠졌다”며, “김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낸 것과 달리 금통위 안에서는 금리를 동결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양치기 소년'이 됐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강래 의원은 “과잉 유동성은 한국 경제의 최대 암초로, 물가 상승과 부동산 거품 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기준금리 동결은 한은이 정부에 종속된 결과이며 이로써 한국은행은 ‘기획재정부 금리국 또는 남대문출장소’로 전락했다”고 혹평했다. 이에 국감현장에서 김 총재는 “환율(하락)을 막겠다고 (기준금리를 동결) 한 것은 아니다”며, “대외 환경이 매우 급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반적인 국가 경제의 안정을 위한 것으로, (금리 인상) 실기 여부는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김 총재는 덧붙여 “금리 정상화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기준금리 동결에 대해 “서민을 외면한 한은의 직무유기로, 국민에게 물가 고통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며, 환율 방어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자유선진당 김용구 의원도 “환율을 이유로 물가 관리를 포기한 것은 수출 대기업 등 가진 자를 위한 정책 결정”이라고 김 의원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금통위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자본시장과 환율의 변동성은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해치는 큰 문제”라며 “(투기적 목적의 외국인 자금 유입은) 거시 건전성의 틀을 통해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해 금통위의 금리동결이 정당한 결정이었음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