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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관광 시리즈 ④ ‘근대 2대 발명’의 교차점 그리니치

망원경, 카메라 옵스쿠라 통해 빛의 과학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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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4호 편집팀⁄ 2010.11.01 15:40:46

그리니치 = 이상면 편집위원 / 영화학 박사 런던에 가면 들릴 곳이 많다. 문화 탐방이 주목적이던, 업무 외에 여유 시간이 생겨서 문화공간에 가건, 문화적 명소가 많은 것이 런던의 특색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갈 수도 있겠고,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테이트 미술관(Tate Gallery)이나 현대미술관(ICA)에 가볼 수 있다. 뮤지컬을 좋아한다면 웨스트엔드에 가서 공연을 골라 볼 수 있고, 그 외에도 연극, 전시 등으로 가볼 곳이 많아 여행자는 항상 빠듯한 시간에 어려움을 겪는 게 런던이다.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니치(Greenwich) 천문대에 가보는 것도 좋다. 예전에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리니치 천문대’라고 배웠지만 실제 가서 보면 정식 명칭은 왕립그리니치관측소(Royal Greenwich Observatory)다. 위치는 런던 시내에서 전철을 타고 나가다가 남동 방향으로 빠지는 교외선으로 갈아타고 30-40분 정도 가면 된다. 그리니치 역에서 내려 그리니치 공원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런데, 막상 여기서부터 조금 간단하지 않다. 공원으로 가는 길 안내판이 잘 안 보여 공원 입구까지 가는 데 약간 헤맬 수 있고, 10분 가량 걸려 입구에 도착한 다음에는 공원이 아주 넓어서 천문대에 도착하기까지 20분 가량 걸린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지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정원을 아주 좋아한다. 잠시 영국인이 돼 공원 산책을 즐기다 보면 천문대가 낮은 언덕 위에 나타난다. 그런데 그리니치 천문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관측센터와 시간측정소, 카메라 옵스쿠라 관측소 등 여러 건물들이 있다. 인근에는 해양박물관과 그리니치 미술관도 있어 관람할 곳이 은근히 많다. 시간의 기준이 되는 그리니치의 안내책자 표지엔 경주 첨성대가 ‘최초의 천체관측소’로 소개되고, ‘우주를 통한 세계지배’에 썼던 망원경들이 즐비 그리니치 관측소 그리니치 관측소는 본래 1675년 영국 왕 찰스 II세가 세운 천문관측 및 시간측량연구기관이다. 그래서 왕립그리니치관측소라고 이름이 붙었고, 초대 천문대 책임자로는 존 플램스테드(John Flamstead)가 부임했다. 그는 이곳의 한 건물에 거주하면서 천문을 관측하고 행성과 태양ㆍ달ㆍ별의 위치와 운행을 탐구했다. 그 이후 다른 과학자들이 계속 부임해 천문과 시간 측량 연구를 했다. 관측소는 언덕 위에 있어서 하늘을 바라보기 좋고, 아래로는 들판과 템스 강이 굽이치며 흘러가는 전망도 보기 좋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겼다가 최근에야 다시 현재 위치로 돌아왔다고 한다.

찰스 II세가 이런 관측소를 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미국 대륙이 발견된 뒤 17세기 후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상선들이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다. 전세계의 진기하고 값나가는 물품들을 이런 배들이 실어왔지만, 한 가지 걱정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의 폭풍과 해일이었다. 자신의 배와 좋은 물품들을 바다 속에 쏟지 않기 위해서는 천문·지리에 관한 지식이 필요했기에 이를 세웠다고 한다. 관측소의 언덕 밑을 멀리서 흐르는 템스 강을 보니 지금은 배가 별로 다니지 않는다. 그렇지만 17-18세기에는 배가 오늘날 거리의 자동차처럼 많이 운행했다고 한다. ‘조선의 세종대왕이 한글연구소와 함께 과학연구소도 세웠더라면 우리가 더욱 앞서 나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리니치 관측소에 들어가면 처음 만나는 공간(본관)은 자오선-망원경 건물이다. 이곳 1, 2 층에는 근대 이후의 망원경들과,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매우 길쭉하고 큰 망원경들은 우주 천체 관측의 주요 도구로서, 르네상스 이후에 만들어졌다. 최초의 망원경은 1608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졌는데, 이 소식을 들은 갈릴레오는 곧바로 자신이 망원경을 만들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시품 중에는 아이작 뉴턴의 망원경이 있다. 뉴턴도 자신의 망원경을 스스로 조립해 사용했다고 한다. 출구로 나가 안쪽 건물로 가보니 천문관측소(Astronomy Center)와 우주관측을 하는 천문대(Planetarium)가 있다. 옛날의 연구 모습도 전시되지만 오늘날의 연구 현황도 보여준다. 초대형 망원경으로 우주천체의 여러 행성들을 관찰하고, 이들의 위치와 운행을 알려주는 첨단 시설도 있어 교육적 역할도 한다. 본관으로 돌아가 기념품점의 안내책자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앞부분에 경주의 첨성대 사진이 실려 있다. 설명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소’(observatory)라고 되어 있다. (Guidebook, 2007년판 7쪽) 옆의 설명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고대의 북경, 인도의 라자스탄, 중동, 이슬람권의 북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 천문 연구가 진행됐지만, 이들의 천문관측소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쓰여 있다.

옆 건물로 가보면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건물인 플램스테드 관(Flamstead House)의 내부에 천문관측실과 시간 갤러리 등이 있다. 왕립천문학자로 임명된 플램스테드가 초대 천문대장으로 거주하며 연구하던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옥타곤룸(Octagon room)이란 비교적 넓은 거실 같은 곳의 큰 창문 앞에는 하늘을 향한 망원경과 시간 측정 기구들이 놓여 있다. 시간 갤러리에 가보면 시간 측정을 연구하던 크고 긴 기구들이 서 있다. 이들을 보다 보면, ‘시간의 측정이 왜 중요했을까?’ 혹은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 역시 항해에서 중요한 사항이었다. 근대의 선원들이 배를 타고 갈 때에는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가야 희망봉이 나타나고, 인도가 있고, 또 중국 혹은 남미, 미국이 나타나는지를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침반이 필요했고, 세계 각 곳의 위치에 따라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야 했다. 항해사(navigator)의 중요성이 대단했을 텐데,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자동차에 ‘항해장치(내비게이션)’를 달고 다니며 도로를 파악한다. 그리니치 관측소는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곳이다. 세계의 기준시를 정한 세계의 본초 자오선이 여기를 지나고, 경도의 원점도 여기다(1884년 워싱턴 국제회의에서 결정). 소위 ‘그리니치 평균시’(Greenwich Mean Time)란 것인데, 그리니치 자오환을 0도로 잡고, 경도 15도 마다 1시간씩 차이나도록 정했다. 즉, 그리니치 평균시가 국제적 시간체계의 기준이 된다. 그러니까 영국이 0시면, 중부 유럽의 독일ㆍ프랑스는 1시가 되고, 동경 135°가 기준인 한국과 일본은 9시가 된다.(서머 타임 때는 8시) 카메라-영화를 가능케 한 최초의 영상장치, 카메라 옵스쿠라를 만든 사람은 ‘마술사’란 이유로 잡혀갔지만, 그 기계는 오늘도 템스강을 뿌옇게 비춰 카메라 옵스쿠라 관측실 이 건물의 옆에 별관 같이 붙어있는 건물에 카메라 옵스쿠라 관측실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별로 관심 없어 하는 곳이지만, 영상의 역사를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중요한 곳이며, 사실 이것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란 세계 최초의 시각기구로서 암실에서 렌즈를 통해 포착된 외부의 이미지를 볼 수 있게 하는 기구다. 오늘날 사진기와 영화카메라를 포함한 모든 영상기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문에 장막을 드리우고 가운데의 원형 테이블 위로 맺히는 이미지를 보았다. 지붕 꼭대기에 설치된 렌즈를 통해 자연풍경의 이미지가 들어와 반사경을 통해 직각 아래로 꺾이게 만든 구조다. 여기서는 언덕 아래 템스 강변의 풍경이 보이는데, 맑은 날에 내부를 아주 깜깜하게 만들면 더 선명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필자가 간 날은 흐려서 템스 강 건너편의 흰 건물들(그리니치 병원)이 뿌옇게, 희미한 윤곽으로 보였다. 과학사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과학의 상징적 발명을 흔히 망원경과 시계, 그리고 이 카메라 옵스쿠라를 든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중세처럼 신이 지배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눈으로 직접 세상의 모습을 관찰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 이태리의 천재 과학자 지오바니 델라 포르타는 큰 천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과한 햇빛에 의해 벽에 투영되는 동물과 인간의 이미지(像)들을 보여 줘 사람들을 놀래켰다. 이것이 세계 최초로 영상실험이었고, 그는 “요술을 부렸다”는 죄목으로 교황청에 불려갔다 ― 갈릴레오가 천동설로 인해 교황청에 불려갔듯이. 그로부터 1세기 후에 인위적인 영상 이미지는 카메라 옵스쿠라라는 시각기구에 의해 당시 최첨단 과학으로 나타났다. 유럽 화가들은 미술작업에서 건물이나 인물을 스케치할 때 인간의 눈보다 정확하게 그리는 데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했다. 필자가 보기에 그리니치 관측소는 근대 초기 과학의 압축장이다. 인간 스스로 세계에 대해 관찰-측량을 하고, 기록하고, 입증을 하려고 했던 근대적 과학정신을 보여주는 점에서 그렇다. 관측소를 나와 언덕을 내려오면서 다시 첨성대가 머리에 떠올랐다. 첨성대를 만든 한국인이 근대에 와서는 왜 그리니치 관측소 같은 시설을 못 지었을까? 사의 전개는 순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고, 동서양의 문명 발전은 서로 바뀔 수 있는 점을 알면서도, 만약 그랬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랐으리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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