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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뷰]윤은자 YOON, EUNJA

시공의 기록부터 추상표현주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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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5호 편집팀⁄ 2010.11.08 13:49:57

박종철 (화가·미술평론) 광학과 렌즈의 메커니즘으로 일컬어지는 사진은 미술사적인 맥락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일찍이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낭만주의에 대항하여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라고 피력하여 사실주의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사실 사진술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부터 리얼리스트들은 회화 작업을 위한 도구로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뒤이은 인상주의로부터 추상주의와 현대의 디지털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회화는 필수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사진은 현대미술의 한 양태로 자리하고 있는 추상주의와 팝아트, 전위미술을 비롯하여 현존하는 모든 미술양식은 물론 매스미디어와도 연계되어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윤은자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시공(時空)의 기록성(記錄性)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과 문명, 자연회귀에 대한 염원, 그리고 현존하는 이념과 실존하는 부조리의 실상을 간과하지도 않는다. 그리스 신화와 16세기 르네상스를 인문학적인 시료의 보고라 한다면 산업혁명 후에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대량생산에 따르는 산업화 과정은 이념적인 갈등과 효용성의 산물을 가져오고 가시적인 표현영역의 극대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의 소산물인 팝아트의 탄생과 사진술의 영역 확대는 당연한 시대적 소명이었는지 모른다. 대중에게 익숙하게 접근되어지는 사물과 표현 영역의 매개체로서의 사진은 더욱, 그 범주의 확대와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을 불러왔다. 윤은자는 지금까지 일련의 작품에서 민중신앙의 획을 이루었던 샤머니즘과 연계를 이루며 살풀이를 연상케 하는 보자기와 도시, 바람과 운율을 병치시킴으로써 시공을 일치시키지 않는 초현실적인 상징성과 서정성을 기록하여 왔으나 이번 작품전에서는 시공의 기록부터 추상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사진 미학과 순수미술을 접목시키며 거침없이 조형성을 표현해 간다. 사랑의 숭고함과 개인사적이면서도 은밀한 로맨티시즘, 자연과 문명의 대위법적인 고찰, 문명의 발달에 의한 실낙원의 상징, 범속한 문화와 그 통념에 대한 예시, 기계문명의 발달과 디지털 시대에 따른 인간의 소외와 상실감, 소통의 부재, 문학성의 추출, 서정적 자연 감성 등을 표상화 하는가 하면 순수미술에 대한 동경을 추상표현주의적으로 암시하기까지 현실참여적이면서도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모던 테크닉(Modern Technique)으로 표현하는 순수회화와 사진의 접목은 신선한 시도로서 작가가 금세기의 미술이 사진과 어떻게 관련되어야 하고 멀티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라는 방법론과 광범위한 미학의 요소도 감지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일찍부터 논쟁이 되어왔던 사진이 사실적인 기록성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어느 일면의 범미주의적 속성과 회화적인 미학을 머금은 낭만주의적인 표현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융합시키고 포용하는 것은 윤은자의 사진 미학이 종래의 전통적인 사실주의부터 동시대의 현대미학까지를 아우르는 진보적인 사상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작품 유토피아 시리즈에서는 자연과 문명이 공존해야 한다는 공리적인 귀결점을 제시하고 있고, 이성과 감성편은 사물에 대한 범속한 통념을, 소통 시리즈에서는 현대문명하에서의 소통의 부재에 따른 교감의 필요성을 표현하고 있다. 작은 멸치를 치밀하게 연출한 작품은 마치 20세기를 풍미했던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부인 잭슨폴락의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서 기록적인 이미지를 일탈하여 현대미술에 접목하며, 접근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수작으로 사료된다. 그 밖에도 현상액을 뿌리거나 아크릴릭 물감을 이용한 드리핑기법은 광학의 미학과 회화기법을 조화시켜 가면서 또 다른 사진 예술의 시각적인 방법론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상식이 갖는 경박함, 현대문명에 내재되어있는 불평등과 편견의 위험성에 대한 풍자,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 범속한 사상 등을 표상화함으로써 문명사적인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오브제로서의 장미와 편지의 구성은 사랑의 테마로서 팝아트적인 형식을 빌려 편집한 흥미 있는 구상이다. 한편으로는 자연주의나 낭만주의가 물신거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명의 여신인 아우로라(Aurora)가 새벽녘의 갯벌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을 때 꽃잎들이 하나 둘 흩날려 내려오는 ‘서정’은 우리에게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처연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이다 못해 슬픈 심상까지를 안겨 주는가 하면 ‘황혼녘’의 주황빛이 번져가는 미세한 바다 수면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본적이 있는 한적함 속의 사유 -그것은 인생의 회한일 수도 있고 애틋한 사랑의 편린일 수도 있다- 를 가져다준다. 또 고목위의 여울지는 꽃잎들을 표현한 ‘바람+향기’는 고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희망의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의외의 싱그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밖에도 마주보는 프로필과 게쉬탈트(Gestalt)의 형상을 차용하고 그리드(Grid)를 이용하여 문명과 반 문명, 이성과 감성의 괴리에서 오는 실존적인 자아의 모색을 형상화해 간다. 이것은 윤은자가 형태심리학의 미학을 감지함과 동시에 광범위한 사진예술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21세기, 디지털시대의 총아인 컴퓨터에 고뇌하는 인간을 병치시키는 ‘문명의 규범’에서는 첨단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범람하는 금세기의 상황이다 하더라도 인간이 우선이어야 된다는 슬로건을 상징하였으며 이러한 문명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엄숙함이나 교조주의적으로 설득하는 대신 ‘물감 흘림’의 회화적인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감성적인 호소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의 기법과 회화적 기법의 혼용은 윤은자의 작품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그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순수미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사진 미학의 조형성을 창출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포토그래퍼와 화가는 때때로 각각 회화나 사진에 관심을 갖고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평면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향하는 아티스트로서 상호 당연한 관심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미술 예찬’과 ‘햄릿의 기억’은 무 목적성의 순수예술에 대한 숭고함만을 예찬하는 단순함을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결코 돈키호테식의 기호적(嗜好的)인 선택의 개념은 아니며 다중매체의 시각예술 시대에 이른 오늘, 진지함을 수반하는 시대적인 요청과 철학적인 사유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참신한 주제 설정에 눈길이 간다. 그녀의 작품세계에서 초점잡기(Focus)와 흐리기(Out focus), 피사계심도, 카메라 앵글 등의 변별력과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의 일관성이 있는 예술성은 과제가 될 것이다. 사진과 회화를 접목시키는 방법론이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햄릿의 기억’에서 고뇌하는 인물처럼 변증법적인 고찰로 인하여 또 따른 사진미학이 탄생될 것인지는 그녀를 스쳐가는 세월이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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