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희 (미술비평) 금세라도 터질듯한 탱글탱글한 표면의 다홍빛 토마토나, 속살을 훤히 드러내 흥건한 과즙이 녹아내리는 듯한 딸기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의 유혹이다. 겉껍질에 허연 당분이 배어나는 포도송이들은 알싸한 단내로 후각을 동요하고 침샘돌기를 흥분시킨다. 포크에 찍힌 열매들의 속살은 과즙을 흩뿌리며 곧 싱싱함이 탐닉당하는 순간임을 증거한다. 스푼 가득히 흐물대며 녹아내리는 홍시는 입안에서 식도를 타고 가도 좋을 만큼 과도하게 뭉그러져 촉촉한 반액체의 상태로 있다. 쪼개진 열매들 사이로 흐르던 흥건한 즙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엷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이처럼 황순일의 근작들은 탐스런 과일들의 거부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달콤함의 재현을 뿜어낸다. 보는 순간 탐하고 싶은 과일들에의 욕망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들 가운데 하나인 식욕을 자극시키는 섬세한 리얼리티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작가 특유의 재현적 테크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열매들의 표현은 ‘실재 같은, 너무나 실재 같은’ 형상성으로 하여 ‘낯익은 생경함’으로 이끈다. 이는 매끈하게 반사된 표면효과 탓인지, 실제의 것보다 확대된 크기 탓인지, 과일들의 탱탱한 겉표면이건 녹아내릴듯한 속살이건 말라져가는 순간이건, 과일의 본성을 넘어서는 감지체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득 작가의 재현물에서 기인하는 고즈넉한 실재성의 표면 아래 유동적 실체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마치 나르시스 수면의 그것처럼. 나르시스가 하염없이 바라보며 빠져들었을 연못의 수면은 늘 그렇듯 고요하지만, 수면 아래 생명체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헤집어 놓았을 이미지의 흔들거림은 평정을 되찾음과 동시에 동요를 수반하는 반복적인 과정들의 연속이다. 즉 작가의 재현물은 존재의 투명한 지시물이거나 대리물이라기보다, 존재의 본성과 마주치게 하는 역동성을 은닉한 정적인 장(static field)과 같다. 이는 가장 지독한 고독인 생명 멈춤의 순간에 잠재태의 리얼리티를 정박함으로써 경박한 제스처를 따돌리며 고요 속 동요의 사색으로 이끈다(중략…). “과일은 모든 정물화에 나오는 주요한 모티프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한편 관능적이고 곡선적인 형태와 쉽사리 부패하는 성질 때문에 부정적인 뜻을 지시할 때도 있다. 과일은 바로크시대 언어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의미의 양가성을 갖는다. …쉽게 썩는 성질은 바니타스와 관련되며, 과일에 나타난 시간의 경과는 죽음과 부패를 환기시킨다.”(최정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한길아트, 1998, 235~2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