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꽃들은 그야말로 ‘예쁜 그림’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한다. 하지만 윤영혜는 그림이 단지 예쁜 장식물로 그치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든다. 그림 속에 이런 반기의 메시지를 담지만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숨겨 놓는다. 보는 이가 스스로 메시지를 찾아내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바니타스’는 ‘인생무상’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황금기를 맞았으나 동시에 정신적 폐해도 맞이하게 됐다. 기존의 기독교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네덜란드는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바니타스 정물화를 탄생시켰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허망하고 덧없는 ‘욕망’과 ‘집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윤영혜도 곧 사라질 허망한 것들에 대한 집착, 즉 사그라질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린다. 접시 위의 꽃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시들어 없어질 것들이다. 단지 아름다운 것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면 그림은 과연 무엇을 담고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 윤영혜는 이에 대한 고민을 작업에서 풀어낸다. 2006~2008년 미술계의 호황기 시절 ‘예쁜’ 그림으로 전시를 많이 가졌던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팔린 곳을 방문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봐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림은 병원과 음식점 등에 단지 걸려있을 뿐이었고 이에 그녀는 그림이 장식품으로 전락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닌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Eating Flower’, 벽에 걸린 그림이 지닌 작품이자 상품으로서의 이중적인 단면을 ‘Hide Show-Eating Flower’ 시리즈에 그려낸다. 기존에 회화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작업은 이번에 가진 ‘VARNISH : VANISH 전’에서 영상, 퍼포먼스, 설치 작업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 완성돼 있는 그림을 지우는 퍼포먼스는 진부한 작업을 피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그녀의 바람이 담겨 있다. 얼핏 보면 그림을 지우는 것 같지만 그 지워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작품이 탄생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벽면에는 큰 그림들이 걸려 있다. 하지만 캡션은 달려있지 않다. 이는 보는 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바깥쪽 벽에 달려 있는 그림들은 언뜻 보기엔 직접 그린 그림 같지만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한 가짜 그림들이다. 진짜 그림들은 전시 공간에 마련된 한 방에 마치 가짜처럼 쌓여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라 윤영혜는 말한다. 단지 ‘예쁜 그림이다’라며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 달라고 그녀의 그림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