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진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이번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박유진의 그림에는 항상 그녀 특유의 ‘사랑’에 대한 서사가 존재한다. 그의 그림에는 애매하거나 모호한 이미지적 특질보다는, 개인적인 소회와 기억으로 가득 찬 공감각적인 시간성이 두드러진다. 그의 작업을 통해서 구축되는 사랑에 대한 독특한 관점은 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타자화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회상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망각하기 쉬운 개인의 관점과 역사를 ‘사랑’이라는 끈끈한 소재를 빌려 공간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의 얼굴에는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콧구멍도 두 개’ 듯, ‘둘’이 ‘하나’를 이룬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지칭하는 ‘반쪽’이라는 표현에서 박유진의 그림은 시작된다. 사랑을 매개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다 놓고는 그 이면이 실은 우리 삶의 또 다른 축, 우리의 성장배경이나 환경,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 밀접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간 사진 콜라주 작업을 주로 선보였던 작가는 돌연 2007년, 송은갤러리에서 열렸던 3번째 개인전에서 다시 회화를 시작한다. 불완전한 형태와 신체의 모습, 가령 커다란 구멍이 난 가슴이라든가 풍선모양의 눈깔 등 당시 물리적으로 멀리 있는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이들이 행한 예술적 기능은 이번 2010년 개인전을 통해 화초와 들뜬 색깔들로 릴레이 된다.
각각의 개체성으로 인해 무언가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뚜렷이 식별되었던 2007년 불완전한 신체 그림과는 달리 거대한 엉겅퀴 꽃이나 늘어진 덩쿨, 반으로 갈라지고 닫히는 화원의 풍경은 보다 정리되고 모호해졌다. 그래서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이것이 과연 싱가폴 보테니컬 가든의 화려한 온대식물인지, 3차원 콜라주를 통해 조합된 입체적 공간인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분홍과 연두 같은 인공적인 색깔과 납작하던 평면에서 입체로 탈바꿈하며 만들어내는 오묘하고도 들뜬 기운들은 어느 순간 예상 밖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했던 연인에 대한 사랑이 보다 성숙해 지면서 서로에 대한 거리를 수용할 정도로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림에 들어간 볼륨(부피감)은 그러한 효과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게다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화면을 양분하는 대칭성은 ‘반쪽’들이 하나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개체임을 인정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다 분명히 한다. 납작함과 두툼함이 공존하는 박유진의 화면. 이 둘 사이의 거리감만큼 오가는 다양한 기제들의 충돌은 과연 어떤 결말을 지을 것인가. 어쨌든 지금 그들은 서로 관망하듯, 보이지 않는 머리싸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