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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박현수展, 진화랑 11.16~27

구조로서의 평면 또는 광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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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98호 편집팀⁄ 2010.11.29 13:30:19

오광수 (미술평론가) 적어도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회화는 평면이라는 화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방법의 천착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현수의 화면도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구조로서의 평면의 해석으로 먼저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화면이 주는 이채로운 감각은 먼저 깊이와 넓이란 이중성에 의해 형성되는 구조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중적 대비에서만 구조적 특징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대비로 인해 오는 풍요로움이 신비와 광휘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모호한가하면 구체적이고 동적인가하면 몹시 정적이다. 단순한가 하면 복잡하고, 개념적인가하면 실체적이다.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고 무작위와 정치한 작위가 공존한다. 세부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 그것은 보다 정밀한 분자로 파편화되고 전체를 향한 거대한 질서로 통합돼간다. 그의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이 공존하고 교차한다. 저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속에 잠겨드는 은하의 깊은 침잠이 있는가하면 화석처럼 분명하게 새겨진 이미지의 파편들이 폭발한다. 우주의 창조, 시원의 공간이 이렇게 형성된 것일까. 태초에 신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고 했다. 우주 공간속에 부유하는 작은 기호들, 보석처럼 아롱지는 작은 기표들은 분명 창조의 순간순간을 기록하는 언어의 대용물이리라. 암흑을 뚫고 표상하는 빛의 울림은 그의 화면에 정착되면서 그 고유의 형식 개념이 된다. 빛의 개념을 화면에 끌어들인 현대 작가들이 적지 않다. 박현수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박현수의 빛의 해석은 단순한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관념의 영역에서 더 나아가 종교적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직관하게 된다. 빛은 창조자의 영역에서 온다는 사실을 그의 작품들이 지닌 시원의 기억들이 은밀히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박현수의 작업 과정은 깊이와 넓이의 구조에 맞게 출발한다. 먼저 화면을 무수한 색의 드리핑으로 가득 채운다. 그 위를 다시 색면으로 완전히 덮은 후 물감이 마르기 전에 고무칼로 부분적으로 걷어낸다. 그것들이 영롱한 기호의 파편으로 떠오른다. 때로는 한글자모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알파벳이나 숫자 모양을 띄기도 한다. 우주공간에 부유하는 성운의 신비스런 현현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거대공간과 그 속에 생성되는 수많은 미립자들로 언제나 드라마를 연출하는 화면은 어느덧 평면을 벗어나 현실로의 끝없는 확산을 시도한다. 작가는 그러한 현실이주는 극적인 상황을 어떻게 수용하고 천착해갈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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