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진 (미술평론가·이미지연구소장) 신유라의 작업은 일상을 어슬렁거리며 버려진 오브제들을 모으는 것에서 시작된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갖는 오브제들은 대부분 어딘가에 버려져서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물건들이다. 기능적 측면과 미의 측면 모두에서 버림받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오브제들은 누군가의 개입이 없이는 소생하기 어려운 하찮은 존재들이다. 일상에서 우연한 기회에 주섬주섬 주어온 오브제들을 그는 매우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낸다. 마치 신 내림을 받은 중매쟁이처럼 그는 출처와 기능이 달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들 간의 우연스런 만남을 주선해 준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처럼 우연은 필연으로 바뀌고, 소외됐던 비극의 주인공들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신유라의 접붙임 조각은 ‘초월’이나 ‘해체’의 의미보다는 식물의 접붙임처럼 어떤 시너지 효과를 통한 의미론적 전환을 얻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일관되게 개인의 정서나 우리시대의 사회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시대적 편견이나 고착되고 편협한 의식, 그리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이념으로 무장해서 개인을 억누르고 있는 우울한 현실이다. 이러한 우리의 시대적 우울은 그의 작품에서 일상에 버려진 오브제들을 통해 환기되고, 이 오브제들은 작가에 의해 극전인 반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는 모터나 빛을 이용하여 느리고 미세한 작은 움직임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정체되고 고착화된 의식에 환기팬을 달아 놓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우울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그의 독특한 방식이다. 좌절과 우울을 흥과 해학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작업 태도는 삶의 비극적 주제를 끌어들여 그것을 자연의 리듬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삶의 갈등과 슬픔을 승화시키는 한국 전통 판소리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 현실에 대응하는 한국인 특유의 방법이기도 하다. 자연에는 오직 일정한 패턴과 변화 속에 리듬 있게 생성하는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이분법적 판단과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은 후의 진공상태에서 찾아오는 존재의 리듬과 무심한 흥겨움, 이것이 신유라가 추구하는 예술의 지향점이다. 때문에 그는 시각적인 완결성이나 세련된 조형적 아름다움, 혹은 어떤 것을 재현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어수룩한 미완의 상태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정서적 울림을 표현하고, 디오니소스적 혼돈이나 비극적 상황을 반대의 상황으로 역전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의식이 아니라 어떤 우울한 현실을 흥(興)의 정서로 전환하는 내적인 승화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