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정설로 여기듯 ‘경쟁’을 당연한 가치로 단정 짓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짓밟는다. 고통스럽지만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박화영은 자본주의 사회가 조장한 가치에 휩쓸려 점점 주체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혁명의 파도를 일으키고자 한다. 박화영은 전시장에 ‘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cuba, ultrasonic blind antenna)’의 약자인 ‘쿠바’라는 가상의 나라를 만들며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보여준다. 중남미 나라 쿠바가 지닌 식민지 역사에서 무한 경쟁 시대, 냉엄한 소비 시대가 만든 가치에 지배받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은 점을 발견해 이를 차용하게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스페인이 쿠바를 지배할 때 노예들에게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했습니다. 사탕수수는 달콤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배층이 권력을 행사하는 폭력의 도구이기도 했지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사탕수수와 같이 달콤한 이미지에 현혹돼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지배와 억압의 이미지가 제 작업에서는 설탕으로 표현되고 있죠.” 박화영은 자신이 만든 나라 ‘쿠바’에 ‘쿠바’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쿠바는 작가 뿐 아니라 억압을 받으면서 나름의 혁명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모두 내면에 쿠바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배 계급의 영향으로 표면 위로 드러내지 못하고 수면 아래 깊이 품고 있을 뿐이죠. 이번 전시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쿠바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1층 전시장에는 ‘쿠바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주제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돌고래 인형, 머리카락 등 소박한 물건들이 소개된다. 2층 전시는 ‘틀린 번호, 잘못 남겨진 메시지입니다’를 주제로 자동응답전화기에 잘못 전달된 타인의 메시지를 작가가 립싱크하면서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3층은 ‘혁명 만세, 바다가 없는 이야기’를 접하는 곳으로 전시를 보는 이가 1, 2층에서 작가와 타인의 쿠바를 만나봤다면 이젠 스스로의 쿠바를 찾아보게 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층에 상영되고 있는 대형 비디오 영상 작업으로 이번 전시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비디오 영상 앞에는 물이 담긴 여러 종류의 접시들이 놓여 있는데, 접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 물은 잠들어 있는 쿠바를 상징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혁명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장되고 조정당한 온갖 꿈들을 막아내고 다시금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떳떳한 주인이 되는 것도 혁명이라고 볼 수 있죠. 접시 안의 물이 흔들려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듯 내면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쿠바를 깨워 ‘자기비판’, ‘자기혁명’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02)737~7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