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희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 김대현은 첫 번째 개인전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I want to be like I wasn't there’에서 일련의 드로잉 연작과 함께 그 확장으로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선보인다. 존재와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일기나 기록과 같은 드로잉으로 꾸준히 발표해 왔던 김대현은 이번 전시를 통해 특별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전달한다. 김대현의 드로잉에서는 유기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인물과 그 형상에서 증식되어 만들어진 동일 이미지가 중첩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작품 안에 보이는 인물 간의 제스처는 다시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주요 요건이 된다.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처럼 둘은 똑같이 닮아있지만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평소 자기와 타자의 관계 혹은 자아와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자아’로 인식되는 반복되는 형상은 친밀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드러내며 묘한 감정을 전달한다. 흰 종이 위에 명료한 검은 먹 선으로만 간결하게 표현되는 인물은 감정이 지워진 무표정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둘은 대부분 측면을 바라보거나 서로를 바라보되 정면은 결코 응시하지 않는다. 이는 또한 화면 밖에 있는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둘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또 다른 자아인 알타에고(Alter Ego)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함께 전시되는 애니메이션 ‘시-드로잉 기계’는 드로잉의 연장이며 동시에 확장된 작업의 실현이다. 김대현은 작가가 작품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이 아닌, 또 다른 매개를 통해 완성했다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시-드로잉 기계’라는 제목으로 작업의 성격을 부연하고 있다. 두 개의 화면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의 왼쪽에는 텍스트가, 오른쪽 화면은 기존의 드로잉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이미지로 되어 있다. 텍스트의 한 문장 한 문장은 도통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한 시의 구절처럼 읽히지만 이는 작가가 나열한 일련의 무의미한 단어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해 자동 조합되어 완성된 문장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른편의 화면도 작가가 미리 그려놓은 여러 포즈의 인물들 그리고 배경이 무작위로 조합되어 완성된 드로잉에 다름 아니다. 그는 드로잉 속에서도 가위, 바늘과 같은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낯섦을 강조하는 방법을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대상 간의 이질적인 접목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우리의 감성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게 한다. 이번 김대현의 전시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는 내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여느 자아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고 갈등해 봄직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그렇고 그런 사소하고 흔한 내용들이다. 이것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타인에 대한 작가 자신의 수줍은 말 걸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