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작업과 함께 살아온 작가의 작품에는 그동안의 고뇌와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같은 소재를 그린 그림이라도 작품에 쌓인 ‘세월의 흔적’이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는 억지로 만든 작품성이 아닌 그동안 쌓인 열정과 집념의 기운들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작업실에서 만난 최예태 작가는 “기존의 작업 방식과는 다르게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진다”며 “최대한 단순화하면서 남들과 차별화된 작업을 하고자 고뇌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 구도와 색채 그리고 전체적인 틀을 구상해 기존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자 생각하는 시간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신개념 구상이다. 강렬한 색감이 오감을 자극하는 ‘붉은산의 환타지’시리즈로 익히 알려져 있는 그는 오랜 세월을 미술인으로 살아온 노장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생각과 마음만은 누구보다 젊었다. “회화는 어떠한 경우라도 말로서는 유효하지 않아요. 예술가는 가장 훌륭한 영감의 촉진제이자 불타오르는 창작의 점화제죠. 달을 얻으려 할 땐 그것을 등져야 하듯이 명화를 그린다는 의식 자체를 버려야 해요. 모든 것을 얻으려 할 땐 그것 자체를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해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 소산이라면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해야 하죠.”
최근 그가 작업하면서 추구하는 점이 있다. 바로 최대한으로 단순화시킨 작업이다. 이는 오늘이라는 시점과 맞물려 현대 감각에 맞춘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남들과 차별화하는 변화를 주고자 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불러낸 결과다. 이렇게 단순화시켜 변화를 준 그의 작품은 분명 다른 구도와 형태를 지녔음에도 그 특유의 느낌과 분위기 그리고 색감은 변함없는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단순하면서도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끊임없는 생각과 사색 그리고 고뇌에 의해 형성된 감각으로 나오는 작업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림의 최종적·궁극적인 목적은 최대한으로 단순화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요. 복잡하고 덧칠이 심해지면 색채가 혼탁해지고 선명도가 떨어질 수 있죠. 그리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해요. 많은 생각과 고뇌를 거치고 나오는 결과에 희열을 느끼고 그 때문에 그림을 그려요. 고뇌의 흔적이 없다면 가치가 없어요.” 퀘벡대학교 마리오 메롤라 교수는 “최예태 화백의 화폭을 대할 때 풍경, 도시의 장면 또는 정물 혹은 나체 등 그의 작품 형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 화가가 선택한 규격의 선정과 예술가와 또 한편 그가 전개하는 시각적 세계 사이에 연력 지어지는 내적 대화를 인식하고 이해해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안에 있는 초상, 물체, 형태, 볼륨, 빛, 공간 등은 넓이와 높이의 한계 안으로 화가의 내적 충동을 끌어들이며 관찰한 물체의 충실하고도 유일한 현존의 엄격한 테두리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내가 그의 작품에서 보고 발견한 것은 그의 표현의 내적 본질이며 그 본질은 다만 기술적 바탕과 어떠한 효과를 내는 재치 위에서만 연결 지어지고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풍경, 정물, 나체, 그런 것들은 그에게는 한 개의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 오로지 작가는 그러한 작품을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것이며 또한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 동안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는 중개적 세계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풍경, 인물, 꽃, 누드 등 여러 가지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뭐든지 다 예술이 된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작품이 된다는 그는 모든 것이 바로 그림의 소재가 된다고 한다. 앞으로도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그려나가겠다는 그는 소재가 무궁무진하게 많아 걱정이 없다며 웃어보였다. 그는 “정을 주면 좋은 작품, 혼을 쏟으면 최고의 걸작이 된다. 이를 염두에 두어 임하되 최선을 다해라. 꾸준히 꿈을 포기하지 말고 나아갔으면 한다”고 후학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1958년 첫 개인전을 기점으로 2008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회화 50년을 결산하는 기념전을 가질 만큼 긴 세월 한 길을 걸어온 그는 늘 연구하고 새로움을 창작해 온 작가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특선 연 4회, 목우회 공모미술대전 대상, 통일부장관표창 등 수많은 수상을 해오며 현재 한국현대미술가협회(KAMA) 회장과 국가 보훈문화예술협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처럼 미술 인생으로 5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아직도 젊은 작가 못지않은 뜨거운 열정과 집념이 그의 모습에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