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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임스 조展., 장은선 갤러리 12.22~30

고요하다. 소리는 없지만 절규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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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202-203호 편집팀⁄ 2010.12.27 13:47:34

손영국 (영화감독, 크레이티브 디렉터) 위선을 미학으로 승화시키지 않는 제임스 조(James Cho)의 렌즈는 오만함이 있는 앵글이다. 시끄러운 세상의 풍속을 멈춰버린 것처럼 고요함을 숭배하는 작가 제임스 조. 그는 요리를 하면서 간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료 그 자체의 맛을 그냥 느끼게 한다. 그의 사진은 담백하다. 작가 스스로가 미학이 갖는 위선을 배제한다. 작품성에 대한 위선적 가치의 기준보다 작가의 가치 기준에 충실한 리얼리티 앵글을 잡아낸다. 그의 미학은 있는 그대로를 사진의 메커니즘에 의존 하지 않고 자신의 눈처럼 아니, 우리 인간의 눈처럼 ‘그냥’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앵글은 만들어 내지 않는 리얼리즘의 오만함이 있다. 제임스 조의 이 오만한 앵글은 시끄러운 세상의 풍속도에 소리를 삭제했다. 그래서 시간이 멈춰진 것 같은 고요함이 있다. 이는 작가의 미학이 순간을 멈추게 하는 ‘고요함’의 힘이 아닐까 한다. 이번 전시 타이틀 ‘Another scene behind scene’은 작가의 철학적 요소와 작품의 가치를 환경적 요소보다는 감성과 이성적 요소로 분석한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파란 지붕과 회색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회색인 것은 구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운천(雲天), 이것은 한 장의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너머로 남산이 있다. 다시 그 너머로는 인사동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그가 총체적인 영화, 영상의 세계에서 다시 원초적인 사진의 세계로 들어갔듯이 그의 사진은 또 다시 보이는 것 너머로 보이지 않는 예술혼까지 집어내는 집요함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제임스 조의 사진 예술이다.

고요하다, 텅 비어 있다. 또는 소리는 없지만 절규하고 있는 것, 클로즈 업(Close up)으로 꽉 차있는 앵글이지만 다시 그 너머로 다른 지평을 보여주는 사진은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어찌 보면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스타인(Sergei Eisenstein)의 몽타주 이론 속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적 철학이 있다. 그는 아니라고 부정 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부정조차도 그는 가히 변증법적이다. 그의 사진이 그러하다는 것은 그의 사상과 철학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이른바,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저항과 열정으로 죽음과 맞서 싸우는 그의 면모를 필자는 가까이서 여러 번 경험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독과 싸워 나가는 그의 고요한 투혼은 눈물겹다. 슬픔을 이겨내는 극복의 지혜를 보면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모습이 연상된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불어 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해도 그 예술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그는 팜 트리(Palm tree) 같은 모습이 있다. 키다리 팜 트리, 제임스 조. 높이 자라나는 팜 트리 마냥 그의 사진 예술도 그 만의 경지를 넘어 다시 새로운 도전의 세상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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