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미술평론가) 차민영은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의 필수품인 서류가방 형태의 구조물 안에 축소모델의 세계를 연출한다. 입 벌린 검은 가방 사이에 아코디언처럼 접혀진 주름 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축소모델 특유의 아늑함이 없다. 그것은 수정구슬 안에 안치된 눈 오는 작은 마을 같은, 곧 손에 곧 잡힐 듯이 현전하는 행복의 가상이 아니라, 무미건조한 우리의 일상을 빼닮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무기력하고 부조리한 일상의 동어반복은 아니다. 무엇보다 작가는 이 정체돼 보이는 세상에 운동을 부여한다. 운동은 동영상이나 점멸하는 조명에 내재된 시간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련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행하는 가방에 의한 것이다. 가방은 무엇보다도 개인을 규정하는 사회체계의 획일성을 상징해,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과의 표리부동의 일체감을 가진다. 가방 안의 다양한 상황에 놓인 또 다른 가방들을 통해 그것들이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3차원 공간 안에 놓인 가방을 바라보는 관객의 상황은, 공간 안에서 또 다른 공간을 반복하게 한다. 즉 그것은 현실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듯한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가방 안에 갇혀 있을 것이라는 암시인 것이다. 선적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어내고 만들어진 무아경은 비록 가상적인 차원이지만, 잠시나마 소외된 현실을 잊게 해준다. 축소 모델 속 무대는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곳에서 인간을 틀 짓고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순환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차민영의 작품에서 체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이탈 방지장치 중의 하나는 복제이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이 작동되는 방식은 보는 자는 보이지 않은 채, 보여 지는 자를 낱낱이 드러나게 하는 것, 또는 감시된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어쨌든 차민영의 작품 속 가방은 이 모든 난관을 뚫고서 여행, 또는 탈주를 계속 시도한다. 이 영원한 유목은 디지털 세상의 현혹과 달리, 진짜 유목민처럼 죽어서야 자신이 태어난 그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남은 물리적인 이동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환상의 무대는 계속 이어진다. 차민영의 작품에서 가방의 여행은 작가 스스로를 포함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답은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자를 규정하는 편재하는 권력에 특정한 얼굴이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 권력의 양상이 매우 익명적이고 미시적이고 치밀하다는 것, 그래서 아마도 탈주 역시 모종의 권력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배하는 권력과 구별될 수 있는 이 또 다른 권력은 치밀한 설계와 작동방식을 요구한다. 여기에 21세기에도 여전한 예술의 역할이 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