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14일 오전 한나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옛 남영동 보안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내 ‘박종철 기념관’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안 대표는 지난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담당 검사로서, 고(故) 박종철 열사 24주기인 이날 박종철 열사의 부친과 전화통화를 하다 이곳을 방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는 지난해 7월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이래 불교계 외압 논란으로 큰 위기에 빠졌으나 곧이어 터진 천안함 사태로 그의 잘못이 묻혔으며, 이어 최근에는 ‘보온병 포탄’ ‘자연산 발언’ 등 실언을 함으로써 숱한 패러디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이번 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에 결정적 기여를 함으로써 당-청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화제의 한복판에 떠오르면서 ‘뺏길 듯 뺏길 듯 안 뺏기는’ 절묘한 드리블 능력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안 대표의 14일 박종철 기념관 방문은 잇단 설화(舌禍)와 정 후보자 낙마 사태에 따른 당-청 갈등, 야당의 무차별 공세 등으로 시련에 직면한 상황에서 ‘초심’을 되새기려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안 대표는 이날 KBS 1TV의 ‘대한민국 국군, 우리가 응원합니다’ 생방송 출연 직후 검정넥타이로 바꿔 메고 박 열사가 숨진 5층 조사실에 들어서면서 24년 전 9년차 검사 시절로 돌아가 기억을 생생하게 회고했다. 안 대표는 “(물고문을 밝혀낸) 황적준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에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하라’는 압력이 있었으나, 나는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라고 상부에 보고했다”며 “심장마비, 자살로 위장되는 경우가 많고, 압력을 받을 수 있어 목격자 2명을 (부검에) 참여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안 대표는 “이후 안기부에서 ‘심장마비로 묻어버릴 수 수 있겠느냐’고 했지만, 나는 ‘보도가 됐으므로 묻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강조하면서 “광주 민주화 항쟁 때 전주지검에 근무했는데, 계엄군 때문에 최초로 사망한 이세종 학생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못해 (박종철 사건을) 목숨 걸고 수사했다”며 당시 상황의 심각함을 전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이날 방명록에 ‘민주화를 가져오고 본인을 산화한 박종철 열사의 숭고한 뜻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자라나는 많은 후배들이 배우고 기념하길 기원합니다’고 적은 뒤 기자들에게 “우리가 누리는 완전한 민주주의는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희생과 피, 목숨의 대가”라며 “한 젊은 영혼의 숭고한 뜻이 너무 빨리 잊히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안 대표는 같이 동행한 박 열사의 친구인 박종훈 씨에게 “(고문자들이) 이 친구 소재를 묻다가 (박 열사의) 목을 누른 것이다. 자네는 빚이 많다”고도 했다. 한편 안 대표는 최근 감사원장 내정자 사퇴에 따른 당-청 갈등의 주역으로서 여권 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고, 야당의 ‘안상수 흔들기’의 대상이기도 해 앞으로 그가 어떻게 리더십을 회복해 나갈지 주목된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제기한 ‘안상수 차남의 서울대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이 허위로 드러나긴 했지만, 정동기 낙마 사태로 이 대통령이 안 대표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는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