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실장 요즘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이 화두다.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 팀에 의하면 올해 만 40세가 되는 1971년생 돼지띠 남성들 중 절반이 94세 이상 산다고 하니 ‘인생 100세’라는 말이 한 때의 유행어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동물은 성장기의 6배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성장기를 20년으로 잡으면 인간은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인생 100세 시대’가 매우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100은 완성의 숫자이자 완벽함의 숫자이다. 즉 고귀한 완전수인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이처럼 완전한 숫자인 100에 도달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곧 보건 및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수준에 근접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평균 수명의 과도기를 살아 왔다. 그러나 완전 수명을 살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생 100세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리학에는 임계치라는 말이 있다. 특정 물질이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바뀌는데, 그 한계를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액체인 물이 100℃에 도달하면 기체인 수증기로 바뀌게 되는데, 이 100℃가 물이 액체에서 고체로 변화하는 임계치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 100세 시대’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일종의 임계치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사회 변화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던 요소들 중 상당 부분은 그 영향력을 상실하는 반면에, 수면 아래 있던 새로운 요소들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부상할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의 패러다임에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개인의 인생 설계와 가족 관계, 정치 권력, 경제 구조, 지역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사람은 ‘인생 100세 시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5가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가 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조 노력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명심한다. 통계청의 사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부모 부양 책임에 대한 태도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즉 노부모 부양은 가족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2002년에는 70.7%를 차지했으나, 2010년에는 36%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특히 인생 100세 시대에 아무런 준비 없이 은퇴 생활에 접어드는 것은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커다란 부담을 안겨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물론 국가에서 수수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에 많은 것을 기대하기도 힘들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도래하는 100세 시대는 전체 인구 중 노인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그 많은 노인을 부양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은 것은 자조 노력 밖에 없다. 이는 인생 100세를 누리는 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에 요구해야 하는 것은 노후를 책임져 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제반 제도나 정책을 재정비해 달라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직장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고, 은퇴 시점을 최대한 늦춘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정년 연령은 형식적으로는 57~58세이나 실질적으로는 53~54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수명 80세인 시대에 50대 초반에 현직에서 물러나면 여생이 25년 이상이나 된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대 초반에 은퇴하면 여생은 태어나서 은퇴할 때까지 걸린 시간과 맞먹는다. 실로 엄청난 은퇴 기간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을 여러 번 폐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런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은퇴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단한 자기 성찰과 자기 계발이 필요한 이유다. 인생의 그 어떤 목적보다도 부단한 자기 계발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가고 싶어도 만류할 것이다. 셋째, 소득원을 포트폴리오 하라 음식을 편식하면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마찬가지로 은퇴생활 자금원이 어느 하나에 편중되어 있으면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 사랑은 가히 자식 사랑에 견줄 만하다.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에서 한국노동패널의 자료를 이용해 가계의 자산포트폴리오를 분석해본 결과,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의 비중은 1999년 84%에서 2008년에는 92%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생 100세 시대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리스크가 우리를 괴롭힐지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으면, 긴급 자금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활용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 하락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게 된다. 은퇴 생활 자금은 그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조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은퇴 소득원의 포트폴리오 구축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연금 자산의 다양화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연금으로부터 은퇴 생활 자금의 대부분을 조달할 수 있도록 가계 자산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넷째, 건강은 돈이다. 메디푸어가 되지 말라 인생 100세 시대에 건강은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강을 잃게 되면 무엇보다도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특히 근로 활동이 어려운 은퇴기에 건강을 잃게 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다른 가족에 각종 어려움을 줄 뿐 아니라, 자신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른바 메디푸어(medi-poor)로의 추락이다. 이런 이유로 인생 100세 시대의 건강 관리는 자조 노력의 일환이요, 재테크의 가장 기본으로서 인생 설계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자녀 교육 때문에 노후 준비를 뒤로 미루지 말라 우리나라의 자녀교육열은 오바마 대통령까지 언급할 정도로 자랑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자녀 교육비 때문에 부모들의 노후 준비가 뒤로 밀리는 것이 단적인 예다. 우리의 자녀 교육은 일방적인 퍼주기식 교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자립심을 심어주는 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를 누가 더 화려하게 키우는가를 경쟁하는 식이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이런 자녀 교육 형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모와 자식 모두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내재돼 있다. 한꺼번에 바꾸기 힘들다면 하나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예를 들어, 월 1회 부모와 자녀가 모여 독서 토론회를 개최해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자녀에게는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다. 지금은 자녀 교육 방식에 작지만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