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에서 한국 역사에 대한 중국 외교관의 신랄한 비판이 나와 화제가 됐다. 주한 중국 대사관의 한 정무참사관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뒤처지는 버릇을 가진 나라’라고 혹평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중국 외교관이 예로 든 것이 ‘망한 명나라를 숭배하고 새로 일어선 강대국 청나라를 배척한 조선 사람들의 멍청한 태도’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광해군은 조선 역사에 유례가 드문 폭군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의 외교 정책은 현대 역사가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광해군의 재위 연간(1608~1623)은 중국 대륙에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발흥하던 시기였다. 균형감각을 지닌 광해군은 몰락 세력(명나라)과 신흥 세력(청나라) 사이에서 균형 정책을 취해 나라의 안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중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던 양반 사대부들은 ‘오랑캐의 나라’ 청과 형제의 관계를 맺는 굴욕을 참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 1623년 인조반정이란 걸 일으켜 광해군을 왕위에서 내쫓는다. 그리고 이어 망해가는 명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신흥 강국 청나라를 내치는 숭명배청(崇明排淸) 외교를 펼친다. 그 결과는? 인조반정 13년 뒤에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와 조선 반도를 도륙질했으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형제의 나라였던 청을 잘못 대하는 바람에 백성들은 죽어나가고 왕조는 신하의 관계로 굴러 떨어진 셈이다. 먼 옛날 일도 아니다. 지금부터 400년 전 일일 뿐이다. 연평도 포격과 그에 이어지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 움직임, 그리고 이에 맞서는 중국-북한-러시아의 동맹 양상을 보면서 400년 전의 일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망하는 세력과 흥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영향 아래서 살아남아야 하는 소국 입장에서는 바람의 흐름을 영민하게 읽어내야 하는데, 당장 목전의 정치적 승부에만 집착하는 조선의 양반님 네들은 항상 국내 문제, 당파 싸움에 집착하다가 ‘섬 밖의’ 세상물정에는 깜깜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인조반정 당시도 반정을 일으킨 양반 사대부들의 생각은 주로 ‘국내 정치’에 꽂혀 있었다. 국제적인 파워 밸런스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당장 서울 안의 정적을 처단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결국 ‘망한 명나라를 100년간 섬기고, 세계 최강의 막강한 제국으로 떠오른 청나라를 배척하다 섬멸을 당하는 치욕’을 스스로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까마득한 옛 일도 아니건만 한국인들은 잊기도 잘 잊는다. 한국이 뒤처지는 버릇을 갖고 있다는 비난을 듣는 반면, 일본은 시대의 흐름을 아주 잘 읽는다는 평가를 최근세사에서 받았다. 서양 나라들이 아시아를 침탈하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 일본의 선각자들은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으로 들어가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근대화를 이뤄냈다. 이어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르자 탈구입미(脫歐入美, 유럽을 버리고 미국으로 들어간다)로 입장을 바꿔 경제부흥을 이뤘으며, 미국이 쇠퇴 기미를 보이고 중국이 G2로 떠오르자 탈미환아(脫美還亞, 미국을 버리고 아시아로 돌아온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척척 바꿔 왔다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펴낸 책 ‘정세현의 정세분석’에서 분석했다. 왜 우리는 역사에 뒤처지는 버릇을 버리지 못해, 북한은 세계 유일의 사회주의 세습 왕조를 이루고, 한국은 G2 시대에 모든 외교적 역량을 미국이라는 한 쪽에 ‘올인’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