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느 중년 회사원, 역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휴대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가씨, 거리를 방황하는 질풍노도의 학생들, 대화도 표정도 없이 이어폰을 꽂고 사색에 빠진 사람,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 같은 공간 속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부부….’ 김선태는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을 미화하지 않는다. 어떠한 연출도 장치도 더해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면 마주칠 수 있는, 또는 무의식 가운데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는. 이렇듯 김선태는 이시대의 보통 사람을 피사체로 보통의 감정을 그려낸다. 여과 없이 그려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김선태는 그들의 희로애락을 짐작해낸다. 말 한마디 섞지 않은 타인과 암묵적 소통을 하고 감정의 전이를 이룬다. 김선태는 낯설지만 친숙한 타인의 모습을 통해 내면의 자화상을 읽어낸다. 우리가 내 슬픔의 깊이만큼 타인의 슬픔을 가늠하고 헤아리는 것처럼 말이다. 직접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어느 정도의 타인의 감정을 유추해내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 소통과 단절, 고독, 외로움. 이처럼 ‘인간관계’로부터의 모든 희로애락을 김선태는 캔버스에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캔버스 안에서 피사체는 철저히 단절된 자기만의 공간을 확립해낸다. 내면의 감정은 멈춰버린 시공간으로써 캔버스에 형상화된다. 김선태의 작업은 닥종이 위에 은박을 붙이고 그 위에 유황으로 드로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은박과 유황의 산화는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황의 농도에 따라 누렇고 까맣고 변질되는 은박. 이러한 산화의 과정을 통해 김선태는 ‘인간관계’를 역설한다. 관계를 통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하며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은과 황의 관계에 대응을 이룬다. 변해가는 세상속에 변해가는 사람들. 그 간극의 유기적 관계들. 김선태는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내면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캔버스 속 피사체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오늘 날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김선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일본 타마미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유학 시절 재료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통해 좀 더 다채로운 재료를 구현해냈다. 일본에서는 네 번의 개인전을 거쳤으나 국내에서는 이번이 첫 개인전이다. 김선태의 작품 속 타인의 모습에 투영된 인물상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한번 쯤 귀 기울여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