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조각 어긋나 있는 퍼즐, 그 퍼즐들을 하나씩 맞춰가면서 새로운 이미지가 완성돼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퍼즐을 맞추는 색다른 재미이다. 박승훈의 작품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퍼즐이었다. 하나하나 분리돼 있는 이미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사람들이 서서 대화를 하고 있기도, 자동차가 도로에서 달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조각조각에 담긴 다양한 세상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그 세상은 어지럽고 복잡할 것 같지만 오히려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가까이서 봤을 때도 멀리서 봤을 때도 눈길을 끄는 것, 그것이 박승훈 작가 작품의 매력이다. 서울 상암동 난지 스튜디오에서 만난 박승훈은 열정이 가득한 눈으로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16mm 영화용 필름을 OH 필름에 가로와 세로로 빼곡하게 붙여 고정시킨 뒤 필름 홀더에 넣어 사진을 찍는다. 흔히 사진작가들은 필름에 지문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그는 필름을 서슴없이 만지면서 친근한 그의 흔적을 남긴다. 실제로 디지털 인화된 그의 작품에서는 손가락 지문 같이 작업하면서 생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필름에 스크래치가 나기도 하고 색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바래기도 한다고. 이전에는 이런 흔적들을 지우고 소위 말하는 ‘완벽한 결점 없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작품 또한 작가의 행위를 담는 기록이라고 여겼기에 받아들이게 됐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포토샵을 많이 사용했지만 이젠 직접 필름을 스캔하고 현상하면서 색을 잡는 등 아날로그적 요소를 많이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작품에 보다 직접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죠.”
조각난 형태로 촬영된 이미지는 박승훈의 손에 의해 해체되고 다시 하나로 엮인다. 이는 그가 2008년부터 선보인 ‘텍스투스(TEXTUS)’ 시리즈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글자들이 필요하다. 각각 의미가 있는 텍스트(TEXT)가 모여 글을 이루는 것처럼 조각난 이미지들은 박승훈의 손에서 마치 직물의 씨줄과 날줄이 합쳐져 옷감이 되듯 엮여 재구성되면서 하나의 조직, 즉 텍스투스를 완성한다. “하나의 평면에 많은 정보를 담고 싶습니다. 제 작품은 대상을 정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미지들이 엮이면서 측면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어요.” 이미지를 새롭게 엮어가는 작업은 2007년 선보인 ‘보다 나은 설명’ 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다 나은 설명’은 ‘이미지가 때로는 글보다 나은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백 번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한 번 직접 보는 것이 더 이해가 쉽다는 것이다. 박승훈은 30~40km 정도의 거리인 서울의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강 건너편을 걸으면서 1년간 찍은 서울 한강변 사진 7000 여장을 날씨와 계절에 따라 분류해 10장의 이미지로 엮었다. 하나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이미지들은 아무 설명 없이도 한강변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에 촬영할 때는 없었다가 촬영 도중 생기는 건물들같이 한강변이 변해가는 과정이 작품 속에 차곡차곡 기록됐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처럼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객관적인 광경이 보는 이에게 보다 많은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각 프레임 안에 이미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사진가 사코우스키는 사진의 요소로 사물 자체, 디테일, 프레임, 시간성, 시점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박승훈은 이런 관념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그는 여러 이미지를 연결시켜 프레임 안에 제한돼 잘라진 이미지가 아닌 전체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정하게 쭉 걸어가면서 앞에 보이는 대상을 바라본 사진들을 이은 ‘보다 나은 설명’ 시리즈에서 한 눈에 볼 수 없는 이미지를 하나의 평면에 담아내는 등 원근법과 시점의 한계를 극복한다. 또한 여러 계절을 담은 이미지들을 한 데 엮으면서 시간성에서 벗어난다. “고정관념과 한계에서 탈피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단순히 쉬운 사진을 찍기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곁들인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특징이 있다.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보다 나은 설명 ’시리즈를 보면서 자신의 집이 어디 있는지 찾으면서 반가워하고, ‘텍스투스’ 시리에서는 자신이 가봤던 장소가 작품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반가워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박승훈의 바람이다.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장소를 선택하고 사전 조사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에요. 주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곳, 사람들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는 곳을 택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의 아련한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친근하면서도 독특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박승훈의 작품은 8월 서울 청담동 표갤러리 사우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