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잇단 설화로 곤욕을 치르며 ‘낮은 자세’를 유지해왔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2011년을 맞아 ‘민생과 소통’에 초점을 맞추는 등 집권 여당 대표로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안 대표는 한나라당 소속 당협위원장들에게 “연초에 지역구 내 전체 불우이웃 시설을 방문하고, 의정보고회도 진행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신년 초인 1월1∼2일 지역구(경기 의왕, 과천) 내 소외계층 시설 9곳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보온병’ ‘자연산’ 파문으로 위기에 직면한 당내 리더십을 회복하고, 오는 4월 재보선 승리의 밑거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 속으로 파고드는 게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안 대표는 1월 3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를 만나 개헌 문제를 거론했으며, 1월 5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새해 인사를 겸해 각계 지도층과 회동을 가졌다.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안 대표가 이처럼 위기에서 헤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계는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인 2004년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기도한 것을 문제 삼았고, 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공직자들의 종교 편향을 지적해 왔다. 특히 2008년 6월 국토해양부의 수도권 대중교통정보시스템에서 사찰 위치가 누락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이 개신교 집회 포스터에 등장한 데 이어 7월29일 경찰이 조계사로 진입하던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차량을 과잉 검문하면서 불교계의 여론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그러다가 결국 불교계가 2009년 8월27일 정부의 종교 편향 행위에 항의하는 사상 초유의 범불교도 대회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TV 생중계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유감”과 “불찰”이라고 말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의사를 밝히면서 문제는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안 대표가 지난해 12월 8일 예산안 통과 때 불교계의 템플스테이 예산을 챙기지 못한 것은 물론 그 전의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좌파 주지” 표현한 것과 맞물리면서 정부 여당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불교계 템플스테이 예산으로 궁지 몰려 지난 해 3월 11일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봉은사를 조계종 총무원 직영 사찰로 지정하는 안건이 통과되자 봉은사 측이 크게 반발하면서 8개월 간 갈등이 계속됐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3월21일 일요법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에게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좌파 명진스님으로 그냥 두면 되겠느냐”며 외압을 넣었다는 이른바 ‘외압설’을 주장했다. 이후 봉은사에서는 매주 일요법회에서 총무원과 정부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 조계종단 내부의 일이 정치ㆍ사회적 이슈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명진스님은 당시 그 자리에는 안 원내대표와 함께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도 있었다면서 당시 배석한 김 모 씨가 2009년 11월20일 자신을 찾아와 이 내용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명진스님은 자신이 2009년 8월30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1억 원을 전달한 것도 안 원내대표가 지적했다는 얘기로 들었다며 “자승스님은 당시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모아준 돈을 용산 현장에 전달한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봉은사를 직영하려면 봉은사 사부대중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총무원은 안 원내대표와 소통한 것이라며 “이것은 소통이 아니라 밀통,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명진스님은 “안상수 원내대표가 자승 총무원장과 이런 야합이나 밀통을 했다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 아무 데나 좌파 딱지를 붙이는 안상수 원내대표는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명진스님은 “만약 내 말이 근거 없는 허황된 얘기라고 판명되면 내 발로 봉은사에서 나가고 승적부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며 “정당한 명분 없이 봉은사를 직영 사찰로 전환하는 것을 40년 중노릇을 걸고 막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 원내대표는 “고흥길 문방위원장과 함께 자승스님을 한번 만난 적이 있지만 템플스테이 등 불교계 숙원 사업에 대해 건의를 받았을 뿐 압력 같은 것은 없었다”고 반박하고, 명진스님에게 좌파 딱지를 붙이며 비판성 발언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황당하다. 사실무근이다. 봉은사 주지스님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압력설을 일축했다. 이렇듯 현 정부 들어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던 정부 여당과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누락을 계기로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불교계는 지난해 12월 13일 “단순히 내년도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됐다는 이유로 정부와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현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템플스테이 예산을 지원받지 않겠으며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불교계는 12월 22일인 동지(冬至)에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정부와 여당을 비난하는 집회를 갖고 4대강 개발에 대한 반대 입장도 지속적으로 표출했다. 보온병-자연산 발언으로 정치생명 위기 몰려 그 전에 KTX 울산역의 11월 개통을 앞두고 통도사를 병기하는 문제를 두고 개신교계와 불교계가 한차례 힘겨루기를 하고, 개신교계가 팔공산 테마파크와 템플스테이 예산을 문제삼고 이른바 ‘봉은사-동화사 땅밟기’ 사건이 터지자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이 시기에 한나라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공주 전통불교문화원과 통도사 등에서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면서 불심 달래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은 지난해 수준은 유지될 것이라는 불교계의 기대도 높았다. 그러나 12월8일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예산안을 단독처리하면서 템플스테이 예산을 2010년 185억원에서 2011년 122억5천만원으로 삭감하자 조계종은 총무원 차원에서 정부 여당의 사찰 출입을 금지하고 4대강 개발 반대를 선언한 데 이어 예산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갈등 수위는 최고조로 치솟았다. 안 대표는 이보다 앞서 연평도 도발 직후 현장을 찾았다가 보온병을 들어 보이며 포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방송되면서 망신을 샀다. 안 대표가 지난해 11월 24일 연평도 피해 민가에서 바닥에 흩어진 물체를 보고 포탄이라고 했으나 안 대표가 자리를 뜬 뒤 해당 물체에서 보온병 상표가 발견됐다는 것이 한 방송사의 영상을 통해 30일 공개됐다. 이날 방영된 영상에서 안 대표는 폭격으로 그을린 보온병 두 개를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바로 여기 떨어졌다는 얘기네”라고 흥분된 반응을 보였고 옆에 있던 같은 당 황진하 의원이 “이게 76㎜짜리이고, 이것은 아마 122㎜ 방사포”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 일행이 자리를 뜬 뒤 현장에 있던 사람이 “상표를 보니까 포탄이 아닌데, 보온병!”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그리고 안 대표는 지난해 12월 22일에는 장애인복지시설을 방문했다가 취재차 수행했던 당 출입 여기자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성형을 하지 않은 여성을 ‘자연산’에 비유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돼 큰 곤욕을 치렀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안 대표는 “연예인 1명에게 들어가는 성형 비용만 1년에 2, 3억원 정도라고 한다”며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룸에 가면 자연산을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 대표는 나경원 최고위원의 12월 1일 보좌관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애아동 시설을 방문했던 유명 걸그룹 멤버를 거론하면서 “(걸그룹) 얼굴을 다 구분 못하겠다”며 “요즘은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성형을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당내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안 대표의 적절치 못한 발언에 대해 격앙하면서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와 핵심 예산 누락,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남북긴장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안 대표의 설화(舌禍)로 또 다시 민심을 자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 것이다. 특히 일부 최고위원들은 최고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당 운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 당이 이래저래 몸살을 앓았다. 사퇴론까지 거론되며 궁지에 몰렸던 안 대표는 결국 “이 어려운 시기에 여당 대표로서 저의 적절치 않은 발언과 실수로 인해 큰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이며, 반성의 시간을 통해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 ‘정동기 낙마’ 앞장서 MB와 불편한 관계 안 대표는 불과 1개월 사이에 벌어진 세 건의 악재로 국민적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당도 도매금으로 넘어가 비판을 받으면서 한숨이 그치지 않았다. 특히 대표 교체론 얘기까지 나왔지만 대안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푸념과 함께 최고위원들 사이에서조차 4.27 재보선 이후 당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안 대표가 1월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사퇴 요구를 주도한 것이 여론의 호응을 얻으면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날 부정적 여론을 내세우며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거취 결정’을 촉구하고 나서자 안 대표는 서둘러 최고위원들의 의견이 수렴됐다면서 “주말 많은 여론 수렴을 통해 국민의 뜻을 알아본 결과 정 후보자가 감사원장으로 적격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밝히며 사실상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당 지도부의 전격적인 ‘부적격’ 결정으로 정동기 내정자가 낙마하면서 그의 행동은 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반기로 해석됐다. 이 탓에 그 동안 추진돼 왔던 1월 26일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만찬이 연기되면서 당-청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여기에 ‘정동기 파동’ 과정에서 안상수 대표-이재오 특임장관과 임태희 대통령실장-이상득 의원이 막후에서 대립했다는 여권 내 권력투쟁설(說)도 당-청 관계에 한파를 불러왔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번 일로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뭘 하기보다 시간이 약이 될 것”이라고 당분간 불편한 관계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당-청간 불협화음이 자칫 정권의 레임덕을 초래하는 등 정권 재창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내 소통 움직임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1월 14일 밤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의 부친상 상가에 이번 ‘정동기 파동’과 관련해 4인방으로 거론된 여권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조문하면서 즉석 당정청 회동과 같은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물론 안 대표는 이날 오후 4시에 이미 상가를 다녀간 데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간발의 차로 조우가 불발돼 ‘4인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간접적인 연쇄 회동이 이뤄진 셈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안 대표가 다시 원기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우연하게 터진 민주당의 헛발질이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1월 13일 안 대표 둘째 아들의 서울대학교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했지만 서울대의 공식 발표로 사실이 아님이 몇 시간 만에 드러났다. 이 의원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안 대표 조차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채로 논란이 이어질 경우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근거 없는 의혹제기였음이 확인된 이후에야 한나라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안 대표는 “근거없는 허위 사실로 자식까지 욕보이는 정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프다”는 소감을 나타내면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안 대표는 1월 14일 오전에 당초 예정에 없었으나 박종철 열사 24주기를 맞아 서울 남영동에 있는 박종철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안 대표는 24년 전 9년차 검사 시절 당직 검사로 박 열사 부검을 담당했기 때문에 당내에서는 누구보다 인연이 깊다. 그러나 안 대표가 정동기 후보자 사퇴 요구나 민주당의 오발탄이 없었다면 이날 박종철 기념관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안 대표는 방명록에 ‘민주화를 가져오고 본인을 산화한 박종철 열사의 숭고한 뜻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자라나는 많은 후배들이 배우고 기념하기를 기원합니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서 안 대표는 이번 주에는 정치적 불모지인 광주와 대전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진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이 ‘딱 한사람에게 불만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한 사람은 바로 안상수 대표”라고 말할 정도로 이 대통령의 분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리더십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