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 사회에서 일분일초는 소중히 여겨진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나온 건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다이어리에 공부 시간표를 빼곡히 적어 놓고, 직장인들은 달력에 오늘의 일정을 기록하면서 합리적으로 시간 계획을 짠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을 잊고 여유롭게, 느린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김선두와 임만혁의 그림은 그런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김선두는 색과 선, 면들을 반복적으로 칠하면서 장지 위에 무수히 겹쳐 놓는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겹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빛을 발한다. 이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묻히고 잊힌 기억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바쁜 생활 속에 무심히 지나친 소중한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거창하고 화려한 것들이 아니라 드넓게 펼쳐진 들과 밭, 비 오는 날이면 볼 수 있던 지렁이 등 익숙한 풍경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나 익숙해 잊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작품의 제목 ‘느린 풍경’에서도 느낄 수 있듯 간만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 같은 여유로움을 김선두는 전해주고 있다.
임만혁의 그림에서는 해맑은 표정의 소녀와 동물들이 눈에 띤다. 소녀는 양, 개와 함께 잠을 자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얼싸안고 있기도 하다. 평화롭고 여유롭지만 그로테스크하고 풍자적이다. 임만혁의 그림 속에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이는 모두 사람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녀와 개가 소통한다. 본능적 감정을 표현하고, 속이지 않고, 머리를 굴리지 않는 동물을 통해 사람과 동물이 갖고 있는 교감을 보다 절실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임만혁은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껴 본격적으로 동물을 그리게 됐다고. “동물에서 인간과 닮은 모습을 많이 발견했어요. 그래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동물이 적절하다고 느꼈죠. 앞으로는 ‘고독’에 대해 그려보고 싶어요. 인간과 동물 모두 내면에 고독한 감정이 존재하죠. 이를 동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되 은유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네요.” 02)344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