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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정재철展, 쿤스트독갤러리 1.21~2.1

여행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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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7-208호 편집팀⁄ 2011.01.31 14:23:30

고충환 (미술평론가) 삶이 곧 예술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여행과 수집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여행이란 삶 자체와 구별되며, 수집은 레디메이드와 구별됨으로써 예술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켜준다. 정재철의 작업에서 이런 여행과 수집의 기술이나 그 계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들어서이다. 아마도 이 일련의 작업들과 전시들에서 파생된 생각들이 여행과 수집, 여행의 스킬과 도쿠멘타를 본격화하고 구체화하는 향후 작업의 단초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는 한갓 쓰레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기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의 인식과 함께 그 이면에는 일종의 상호 영향 행사와 그 결과로서의 문화적 혼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발상이다. 이 발상을 본격화한 것이 1,2차에 걸친 실크로드 프로젝트이다. 2004년에서 2005년에 걸쳐 진행된 1차 프로젝트는 한국, 중국, 파키스탄, 인도, 네팔을 경유하는 것이었으며,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쳐 진행된 2차 프로젝트는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뉴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명명된 제 2차 프로젝트는 그 주요 루트가 파키스탄으로부터 시작해 이란을 거쳐 터키를 경유하는 것으로서, 여러 면에서 1차 프로젝트에 비해 달라진 점들이 눈에 띤다. 이를테면 처음에 작가는 단순히 현지인들에게 세탁된 플래카드를 전달하고 차후에 그 사용 내용을 기록하고 확인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이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점차 상호 소통하고 상호작용 하는 간섭의 계기를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런가하면 부제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특히 경유하는 국가별 도시의 바자르(Bazaar, 일종의 야시장)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특징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로 대변되는 세계화 시대의 문화적 혼성 현상을 살피기에 시장만한 것이 없고, 이는 플래카드가 가지고 있는 광고로서의 의미 기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설치하고자 하는 장소 여하에 따라서 오브제의 제작 방법이나 그 설치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도로변에 면해있는 노점에 차양을 설치해야 할 경우, 뒤편의 철제 울타리 구조물이 지지대로 변환되는 등 기왕의 구조물이 차양을 고정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의 지지대로 그 의미 기능이 변질되는 것이다. 아울러 실크로드 프로젝트 도큐멘테이션으로 명명된 일련의 부수 작업들에서 작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사물들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낡은 액자 속에 넣어져 일정한 지시적 의미와 함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현지 기록 사진들, 여행 루트를 표시한 직접 제작한 지도와 기록물들, 폐 현수막을 재봉해 만든 옷, 그리고 각 국가를 경유할 때마다 새겨 받은 현지어로 된 여권 도장 등 일련의 사물들에서 미술과 일상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더 애매해진다. 이로써 정재철의 실트로드 프로젝트는 여행과 수집이, 여행의 스킬과 도쿠멘타가 미술(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의 기술은 곧 삶의 기술이며 존재의 기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공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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