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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정미정 Mi jung, Jung

“회색 빛 도시에 유랑하는 실루엣,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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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7-208호 이선유⁄ 2011.01.31 14:26:53

아스팔트 위로 흩어지는 잿빛 매연. 뒤엉킨 전봇대의 전선들을 감싸 안은 창백한 하늘. 자동차의 경적 사이로 섞여든 사람들의 대화. 가는 곳을 알 수 없이 교차되는 분주한 발걸음들. 정미정은 도시 속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물음을 던진다. “왜?”, “어디를 향해” 사람이 도시를 닮아가는 걸까, 도시가 사람을 닮아가는 걸까. 각박한 도시와 그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미정 작가는 도시의 모습을 통해 우리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본다. 정처 없이 떠돌며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서 6년을 머물며 공부를 했어요. 낯선 그곳 도시에서는 철저히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죠. 소속감에 대한 방황으로 늘 정착을 느끼지 못하고 저 스스로가 정처 없이 유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외로움 속에서 도시 속 저 자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됐던 것 같습니다.” 바쁘고 메마른 도시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유년시절부터 작가와 늘 함께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잦았던 이사와 대학 시절 고향을 떠난 서울서의 자취 생활, 6년간의 프랑스 유학 생활, 또 지금 서울의 어느 낯선 하늘 아래…. 어느 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 머물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 동안 정미정 작가는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머물고 있는 ‘도시’라는 곳에서 생존을 위한 의도적인 익숙함의 이면에 낯섦과 고독, 정체성의 혼돈을 느꼈다고 한다.

“도시에 발을 딛고 있는 이 순간에도 늘 ‘정착했다’라는 생각을 하기가 좀처럼 힘들었어요. 항상 떠돌고 있는 느낌, 잠깐 머물다 가는 느낌, 이 분주한 도시 위를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작품에서 표현된 ‘도시를 유랑하는 실루엣’은 낯선 도시를 정처 없이 유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죠.” 인체 형상을 띈 실루엣은 겨울의 눈발처럼, 봄날의 꽃잎처럼 도시의 허공을 떠돈다. 섞이지 못한 채 부유하는 실루엣에서 작가는 도시 속에 정처 없이 흐르는 개개인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파리에서 돌아온 직후 서울에서 가장 그녀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바로 전봇대의 ‘전깃줄’ 이었다고 한다. 대도시에서 전봇대와 전선은 너무 많아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다. 새삼 특별할 것도 없었던 그것들에서 그녀는 문득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계성을 보았다고 한다. “파리에서는 전봇대와 전선을 볼 수 없었어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오니 익숙한 기억속의 그 광경이 아주 낯 선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뒤엉켜있는 전깃줄을 통해 이 도시 위를 서로 얽히고설켜 소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유기적 관계’를 느꼈어요.”

이 혼잡한 도시로부터 서서히 영혼이 잠식돼가는 우리는 분주한 발걸음이 향하던 스스로의 행선지를 잊고 꿈도 잊은 채 살아간다. 차갑고 표정 없는 이 도시 위에서 마음의 고향을 갈망한다. 마음 편히 둘 곳. 도시 속 오아시스를 갈망한다. 정미정은 캔버스 위에 언젠가 정착하고 안길 마음의 안식처를 꿈꾼다. “제 캔버스에 그려지는 풍경은 지금 이 도시의 순간이고 현실입니다. 그림을 보며 각박한 오늘 날 도시에 길들여 진 우리의 모습에 한번쯤 자신의 본질을 되돌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미정의 캔버스 속에는 도시의 차갑고 어두운 색감 이면에 밝고 화려한 형광 빛깔 색감이 대비를 이룬다. 이는 작가가 들춰내는 도시의 두 얼굴을 담아낸다. 도시의 적막 속에 혼재하는 화려함이 바로 그것이다. “파리에서의 유학시절 그렸던 제 그림은 굉장히 차분하고 어두운 색감이었어요. 아마도 그때의 제 마음을 담아 낸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어두웠던 색감을 화려하게 바꿨어요. 비록 소재는 어둡지만 관객들에게 무겁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서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도시와 정체성, 유기적 관계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로 작업을 하는 정미정 작가는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색다른 시각과 느낌의 도시를 표현해보고 싶다고 한다. 작업을 통해 관객과의 대화 하는 것이 작가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정미정은, 향후 새로운 작업에서는 관객과 좀 더 편안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췄다. “작가의 마음이 담긴 그림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는 점에서 작가는 정말 행복한 직업 같아요. …하지만 전업 작가로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해요. 창작 지원이나 레지던시와 같은 작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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