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환 (미술평론) 잔혹동화. 소현우의 조각을 관통하는 주제다. 이 주제는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이다. 잔혹이 동화를 부자연스럽게 하고 비정상적이게 한다. 잔혹과 동화는 같이 놓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렇듯 같이 놓일 수 없는 단어가 같이 놓이는 상황이 불편하고 낯설다. 동화란 아동에게 들려주기 위해 고안된 어른들의 이야기다. 아동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답게 유아적이고 순진무구하다. 동화 속 서사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서보다는 아이러니 즉 반어법으로 읽으면 된다. 잔혹동화는 사실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다. 모든 동화는 그 이면에 억압된 욕망을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고,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의 계기며 잠정적으론 혁명의 계기를 내장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거짓임이 판명되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드러나 보이는 실재계는 과잉과 잉여, 결여와 결핍으로 구조화돼 있는 만큼 현실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나아가 현실을 위태롭게 하기조차 한다. 이 모든 일들은 동화가 일종의 거짓 이야기며 속이는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예고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속이는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속인다. 근작에서 소현우는 신화와 동화 그리고 종교와 같은 거대서사를 차용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반인반마 혹은 반인반수(사티로스와 목신 판)를 차용하고, 동화로부터 요정을 차용하고, 특히 신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극적인 장면으로 유명한 종교적 스펙터클을 차용한다. 이렇게 차용된 서사 속 주인공들은 흡사 대중문화 속의 캐릭터들 같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섹스머신 같고, 온갖 무기로 무장한 게임 속 전사들 같다. 거대서사의 주인공들이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특유의 차갑고 날카롭고 샤프한 몸을 덧입고, 더욱이 상대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현대판 무사들로 재생한 것이다. 이 일련의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무분별한 것들을 뒤섞는다. 반인반수의 탐욕을, 예쁘고 귀엽고 깜찍한 디즈니랜드 풍의 요정을, 팬시상품의 큐티를, 롤리타신드롬을, 유혹하면서 처벌하는 사이렌을, 섹스머신을, 팜므파탈을, 피 튀기는 게임 속 살풍경을, 게임 속 캐릭터를 흉내 내는 코스튬 플레이어를, 그리고 종교적인 성상과 여기에 부수되는 아우라까지. 이처럼 무분별한 것들이 혼성된 유기적인 덩어리에는 빛을 난반사하는 번쩍거리는 표면질감마저 더해져 현란하고 어지럽다. 작가의 조각은 감각적으로 어필해오는 매력적인 상품과도 같은 외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마치 조각 천들을 하나로 잇대듯 스테인리스스틸 조각들을 일일이 용접해 덧붙인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조각은 그 구조나 외장에 있어서(그리고 서사마저도) 자본의 상품화의 기획과의 이중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본은 욕망의 산업이고, 꿈의 산업이고, 환상의 산업이다. 욕망은 과잉이고 잉여며 결여고 결핍이다. 게임을, SF를, 애니메이션을, 큐티를, 코스튬 플레이어를 연상시키는 작가의 살인병기들은 이처럼 부재하는 욕망을, 그리고 그 욕망에 기댄 자본의 기획을 증언하고 폭로한다. 더욱이 매력적인 상품과도 같은 감각적인 외장이 그 기획을 더 잘 숨기면서 더 잘 폭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