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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이호신展, 토포하우스 2.7~15

산청 삼매와 소박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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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9호 편집팀⁄ 2011.02.14 13:48:06

김상철 (미술평론) 작가 이호신은 전형적인 기행작가라 불릴 만하다. 해를 거르지 않고 일상처럼 반복되며 지속되고 있는 그의 작업 역정은 전국 구석구석을 더듬고 보듬어 안음에 게으름이 없다. 수려한 산천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천년 고찰들, 그리고 이 땅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고 있는 마을의 이야기 등 어느 것 하나 따뜻하고 귀하지 않은 것들이 없다. 그의 답사는 온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업이 그저 실경의 차가운 객관성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의 정서를 통해 전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포착되고 채득된 내용들의 발현에서 연유하는 특징일 것이다. 실경산수에서는 유구한 전통의 기운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이 땅의 자연과 풍토를 읽어낸다. 또 사찰그림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천년을 이어 온 정토의 그윽한 향취로 역사의 흔적들을 담아낸다. 또 마을 등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자연과 더불어 면면히 이어져 온 이 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낸다. 그러하기에 그의 작업은 일정한 문학적 서정성과 더불어 기록적인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청담한 수묵은 그가 이 땅을 보듬어 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현대, 혹은 조형이라는 눅진한 기름기나 혀끝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조미료와는 사뭇 다른 그의 필묵은 마치 제철 맞은 취나물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운 것이 특징이다. 간결하고 담백하면서 단호하게 사물의 윤곽을 결정지어 군더더기를 남기지 않는 그의 독특한 필묵은 아마 이 땅에 대한 순례의 과정을 통해 체득되고 육화된 굳은살과도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여일하게 산천을 주유하던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작고 소소하지만 사랑스러운 다양한 식물들을 통해 표출된다. 여리고 소박하지만 욱욱한 생명력으로 이 땅의 한구석을 채우고 메워 온 풀과 꽃, 그리고 그것을 잉태시켜 생육한 바람과 구름, 햇살과 달빛을 통해 이 땅의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중 눈에 뜨이는 것은 조선 중기의 큰 선비이셨던 남명 조식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다. 그윽한 달밤에 눈처럼 핀 하얀 꽃들을 달고 있는 남명매는 남명 선생이 서슬 퍼런 선비정신으로 시대를 일관하며 후학들을 가르치셨던 산천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사실 산청에는 이른바 삼매로 불리는 유명한 매화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남명매이며 단속사지의 정당매, 남사마을의 원정매가 바로 그것이다. 그림 속의 정당매는 고태 완연한 기상으로 달빛 속에 우뚝하고, 원정매는 휘어지고 구부러진 묵은 가지들을 짊어지고 형형한 정신의 표상처럼 붉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작가의 특장인 실경 작업도 그러하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꽃들 역시 사생을 통한 작업들이다. 그것은 그저 생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생명의 외경과 자연의 조화 등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청신한 필묵과 간결한 필치로 담아낸 작고 소소한 자연의 표정들은 그가 순례를 통해 길어 올린 작지만 심장한 울림의 보고서와도 같다. 더불어 즐기고 더불어 살피며 기꺼이 동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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