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길 (철학박사·원광대학교 교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평론가인 그린버그(Clement Creenberg, 1960~94)는 ‘모더니스트 회화(Modernist Painting. 1960)’라는 글에서 모더니즘 회화의 대표적인 특성을 평면성으로 규정한 바 있다. ‘현대 회화가 평면성으로 회귀하고자 한다’는 것은 회화의 역사적인 측면에서나 아니면 그 본질에 있어서도 일대 반란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창안한 공기원근법, 화면에서 그로 인한 환영과 눈속임 기법의 지속적인 사용이 이끌어온 기나긴 미술사를 송두리째 뒤엎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평면성’이 서경자 회화작품의 특성 중 하나로 나타난다. 그녀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 그것은 수채화 물감처럼 물에 개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감성의 표출에 적합한 재료이다. 그것은 또한 추상 표현주의의 특성 중 하나인 ‘평면성’의 실현에도 적합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것은 필경 작가의 내면세계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재료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서경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명상에 기인한다. 이번 ‘명상’ 시리즈의 사물들은 화면 속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으며, 화면의 상부 형태가 차지하는 공간이 하부의 것보다 크게 돼 있음은 역원근법과 같은 도치법의 일종이다. 회색빛 바탕의 상부 공간을 차지하는 푸른색의 나무줄기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푸른색은 이상향의 대명사이다. 굵고 곧은 나무줄기의 모습처럼 이상향에 대한 그녀의 동경은 매우 솔직하고 강렬하다. 나무줄기의 은은한 음영을 드러내기 위하여 붓끝으로 진한 청색을 찍듯이 줄기의 변을 따라 터치들을 나열해 놓고 있지만, 그것은 원근법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것은 청색을 통한 이상향이라는 이미지의 부각을 위한 방편일 것이다. 서경자의 회화세계는 매우 특이하다. 그녀의 회화작품에서 간헐적으로 판화기법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녀는 판화이든지 회화이든지 간에 자신 심상의 표출에 중점을 두어왔는데, 위와 같은 표현방식들이 추상 표현주의의 그것들과 매우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액션 페인팅 기법을 소화해낸 작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어느덧 오토매티즘에 매료돼 있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녀가 모노크롬 기법과 오토매티즘 기법의 절충형을 선보인 것은 그녀 회화의 또 다른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