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를 접목한 사진 작업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이정 작가가 원앤제이 갤러리(대표 박원재)에서 2월 17일부터 3월 17일까지 개인전을 열고 있다. 네온 빛에 실린 ‘사랑’ ‘영원함’ ‘믿음’ 등 영혼의 울림이 있는 언어들이 산, 들, 바다 등 자연과 결합해 존재의 의미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청순한 외모와 신선한 작업 방식, 그 이상으로 내용과 깊이가 있는 작가와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사랑에 관한 언어가 많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지 어느 대학 운동장 공중전화 박스에서 어떤 여성이 울부짖으며 통화하는 것을 들었어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 해주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등등…” 우연히 그런 말들을 엿듣고 사랑에 관한 언어들이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간절함과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안개 낀 산, 적막한 들판, 썰물 때 바닷가 등에 사랑의 언어들을 던져 넣고 거기서 발산되는 원초적 감성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랑에 대한 불신인가 전시 제목이 ‘아포리아(Aporia)’인데 그리스어로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이지요. 영원하고, 해답이 없는 주제인 ‘사랑’이란 난관에 부딪혀 맴돌고 있는 딜레마를 그렸어요.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의 책 ‘사랑의 단상(A Lover's Discourse)’에서 모티브를 잡았어요. 사랑에 빠진 이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되고, 진부한 사랑의 표현들을 끝없이 소비하면서 결국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사진 작업에 언어가 접합되니 의미 상승의 효과가 있는데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영국 유학에서 비롯되어요. 이방인으로 생활하면서 ‘언어가 갖는 한계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전 작업인 ‘접경(Bordering North Korea)’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북한의 접경지대를 찍은 풍경 사진에 ‘We are happy’, ‘Our country is the paradise of the people’ 등을 삽입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미지로서의 언어에 매료되면서 이번 작업도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롤랑 바르트는 “만약 당신이 사랑에 빠진다면 상대는 수수께끼의 존재가 되며, 당신은 끊임없이 이유를 찾고 해석을 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고 했는데 작가로서 저는 ‘나’ ‘너’ 사이 그 어디에서 헤매는 사랑의 언어들을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 읊조려봤을 절대적이면서도 통속적인 언어들이 우리 실제 삶 속에서 늘 함께 하고 있지요. 가령 구글에 ‘I love you with all my heart’를 검색하면 2백만 개의 리스트가 나와요. 이런 말을 황량하고 원초적인 자연 공간속으로 데려가 버려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푸른 빛, 분홍 빛 네온으로 그려진 사랑의 언어들이 처절한 고독과 슬픈 열정으로 통렬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더군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보면서 그 장소로 가는 여정과 사랑에 관한 단상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