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우리는 언제든지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갈 적기”라고 밝히면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따라서 그동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줄기차게 북측의 사과를 요구해 왔던 이 대통령의 태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북한은 이제 핵과 미사일 대신 대화와 협력으로,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와야 한다”며 “92년 전 우리 선조들이 간절히 염원한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완성하는 길은 평화통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하나 된 한민족,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면서 “세계의 대륙과 해양, 동과 서, 남과 북을 잇는 새로운 번영의 교차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우리는 통일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한편, 통일에 대비한 우리의 역량을 보다 적극적으로 축적해 나아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2월 1일 신년 TV좌담회에서 “필요하면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북한이 진정성만 보인다면 올해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정부가 남북 군사실무회담의 일부 내용을 외부에 발설한 혐의로 회담 관계자들을 조사해 회담 결렬에 대한 문책 성격이 큰 것으로 알려진 것도 뒤집어 생각하면 정부가 북측과의 대화 성사에 나름대로 열의를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남 “열린 마음” 유연 vs 북 “대화도 가능” 정부가 남북회담 대표단의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히고 있으며, 실제로 정부는 최근 군사실무회담이 고위급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결렬된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부담은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이 6자회담 재개에 올인 하는 상황에서 자칫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소외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이 대통령의 집권 기간 상대적으로 성과가 적은 남북관계에서 속도를 내려면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잔여 임기 2년 동안 회담 성사를 위해서는 올해가 적기라고 판단해 남북대화에 속도를 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남북대화의 조건은 충족돼야 하지만 정부가 이전보다 좀 더 진일보한 자세를 나타낸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이 대통령 “북한과 언제든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준비돼 있다.” 한-미 대북 자세의 미세한 변화는 대화 재개 신호탄인가? 북한 외무성도 3월 1일 대변인 담화에서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맹비난하는 강경 수사를 되풀이하면서도 이 대통령의 대화 제의와 관련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다”고 미묘한 언급을 달아 남측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뉘앙스가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리고 조선중앙통신은 노동신문의 개인 필명 논설을 인용하면서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 같은 보도는, 지난 해 3.1절 기념사에서 이 대통령이 “북한은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자 곧바로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이 ‘북남 관계를 파국에로 몰아가는 행위’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남조선당국자(이 대통령 지칭)가 3.1절 기념사를 통해 남을 걸고 주제넘게 놀았다”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한층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2009년 8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당시 북한 특사조문단의 이 대통령 면담 이후 북한 측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거론하면서 비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민주조선은 “남북이 북핵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야 새로운 협력의 물꼬가 활짝 트일 것”이라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핵 문제를 북남관계 문제와 뒤섞어 놓아 남조선 인민들 속에 동족에 대한 불신감, 적대감을 주입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고,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 발언에 대해서도 “미국과 야합해 동족을 해치려 하고 있다”고 맹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이 그동안 늘 하던 이야기지만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와중에 대화를 언급했다는 점이 눈에 띄는 것으로서 여건만 마련되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렇듯 그동안 비난으로만 일삼아 오던 북한의 태도 변화와 최근 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 이후 ‘냉각기’에 빠져들었지만 남북 간에 대화 재개 흐름에 미세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즉 남북이 서로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되풀이하는 와중에도 다시금 대화 재개를 전향적으로 모색해보려는 신호음을 잇달아 발신하고 있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남북 간의 화해 기류가 군사 실무회담 결렬 이후 각각 미국, 중국과 협의를 거친 이후 나온 변화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을 향해 대화 재개 ‘분위기’를 조성해 보려는 의도를 보인 것은 공교롭게도 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과 맞물리며 의미를 더욱 키우고 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3월 1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위해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할 경우 미-북 관계정상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미국의 정책 목표가 아니라 우리는 총체적인 관계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토대로서 ‘북한 체제의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이 역시 눈길을 끄는 발언이다. 북한이 항상 자신들의 대화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미국 측에 요구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이 같은 언급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을 떨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공약으로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능력까지 과시한 현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2012년 재선을 위한 선거가 있는 상황에서 일련의 민주화 시위로 정세가 복잡해진 중동 문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성과를 만들기 쉬운 북한 문제로 시선을 돌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특히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우리는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문제를 분리하고 있다”며 “우리가 신중히 모니터할 수 있을 때 식량을 지원하고 그것이 아이들과 필요한 시설에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식량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식량 사정 급한 북한, 과거에 군사시설 때문 개방 않던 강원도-자강도 지역을 국제기구 관계자들에게 공개할 용의를 밝히며 변화.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모니터링 강화’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식량지원에 종전보다 좀 더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이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를 초청해 그동안 군 관련 시설이 많다는 이유로 보여주지 않던 강원도와 자강도 지역에 대한 실태조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 측이 요구하는 모니터링 강화 문제는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국제기구 등이 대북 식량 지원을 호소하면 미국이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를 통해 2008년 지원하다 중단한 33만t의 식량 지원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측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국제기구와 미국 구호기구가 북한 식량 실태 평가를 마치면 4월께 미국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재선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분야 대화로 이어가면서 북핵 문제를 논의해 중국에 빼앗긴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찾아오려고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북한과 중국은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과 장즈쥔(張志軍) 외교부 상무 부부장의 방북을 계기로 중국 측은 남북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북한에 주문했다는 후문과 함께 6자회담 재개 방안을 조율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과 미국은 지난 2월 말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방미를 계기로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이 주의제였지만 대화 재개 전략도 심도 있게 논의하는 등 주파수를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선(先) 남북, 후(後) 6자’ 기조를 유지한다는 기조 하에 대화 조기 재개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 카드를 들고 추가 도발을 시도할 경우 한반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대화 재개 카드를 통해 정세의 긴장도를 이완하고 추가도발을 억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남북 간 대화 재개 모색 기류의 이면에는 2월 19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간의 대화 국면을 향한 정상간 합의의 흐름을 되살려내려는 미-중의 전략적 공감대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론 표면상으로 유연해진 기류와는 달리 대화를 향한 남과 북의 기본태도와 접근 전략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남측은 여전히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로서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표명과 추가 도발 방지 확약 ▲비핵화 진정성 확인을 선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특대형 모략극”이라고 주장하면서 비핵화 문제는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 국면에서는 남과 북이 다시금 대화 재개를 모색하더라도 어느 일방이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는 한 의미있는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하지만 남과 북으로서는 현재의 교착상황을 풀어야 할 대내외적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접점 모색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 대화 재개 국면에서 미국으로부터 일정한 ‘권한’을 위임받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 대화라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잘 활용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조속히 이끌어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대화 흐름이 계속 지지부진해질 경우 미-중이 계속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미-중은 달라진 자세 드러내고 있는데, 한국만 예전 자세 그대로 유지했다가는 미-중이 한반도 좌우하는 사태 벌어질 수 있어” 경우에 따라 북-미, 북-일 등 다른 형태의 양자접촉이 현실화될 공산이 크고 자칫 미-중간 컨센서스에 의해 한반도 정세가 좌우되는 곤란한 외교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 주변 4강 문제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3월 2일 “한국 정부로서도 계속 이 상태로 몇 달을 끌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일정한 성의를 보이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으로서도 당장의 식량수급이 ‘발등의 불’이고 2012년 강성대국 건설과 후계구도 안착을 위해서는 대외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 과제이며, 특히 일정한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키 리졸브 훈련과 중국 양회 일정이 마무리되고 비정부기구(NGO)들의 쌀 식량 평가 보고서가 나오는 3월 하순 또는 4월 초순에 전반적인 정세 흐름에 큰 변화가 나올 것이라는 외교가의 관측이며, 비슷한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의 방북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해서는 남북간 대화가 전제돼야 하는 만큼 북측이 남북 대화에 응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지만 반면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는 적극성을 보이면서도 남한에 대해서는 군사실무회담 등을 내세워 소극성을 보일 수 있다”며 “북한의 이 같은 태도가 향후 한반도 전반의 대화 재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해 북한이 어떠한 상황병화를 추구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