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명이 날 때 그림을 그려요.”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 손소영은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서 가진 첫 번째 전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사동 장은선 갤러리에서 걸린 그녀의 작품들, ‘움직임’ ‘강강수월래’ 연작들을 보면 그 말뜻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흥이며, 예술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순간이고, 강강수월래 춤이 절정에 도달한 지점의 ‘신명’이다. 무속과는 다르게 그녀의 예술성이 자신의 내면과 표현 욕구를 통해 표출되는 방식이다. 그녀의 표현 욕구는 ‘무제’(2008년) ‘나무’(2008년)에서 강렬하고 직접적인 형태로, 소품들인 ‘달리기’ 연작(2010년)과 ‘강강수월래’(2010년)에서는 사람들의 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드러난다. 손 작가는 “과거 10여 년 동안 정적인 구도의 자화상 작업에 몰두했지만, 2006년경부터는 여기서 탈피해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동적으로 그리는 단계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아의 심연에 침잠했다면, 5년 전부터는 인간과 자연, 특히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회의 ‘움직임’(2011년)과 ‘강강수월래’ 연작들(2011년)이다. 이 작품들은 모시천(nettle)을 입힌 캔버스 위에 유화와 과슈, 먹 등 혼합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원무를 추는 사람들의 움직임 형태는 다양하고 미묘한 갈색 톤으로 변주되고, 움직임의 동선은 검은 먹색으로 부각된다. 특히 움직임의 동작선은 주로 먹으로 표현돼 그림에 동양적인 것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이미지는 환상적인 원무의 순간 포착과도 같다. ‘움직임’과 ‘강강수월래’ 연작들은 사진 혹은 영화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동작을 느린 속도로 잡아내 그 움직임이 마치 연결된 프레임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단계로의 변화, 혹은 상승적 발전은 그동안 작가에게 축적된 경력과 예술적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손소영 작가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Kunst-Akademie)의 스승 야니스 코넬리스(Jannis Kounellis)에게서 영향받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아르테 포베라’란 직역하면 ‘가난한 예술’로서 미국의 팝아트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60년대 말 이태리를 비롯해 서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상업적인 예술, 또는 예술의 고급주의를 배격하며 삶과 예술의 직결, 본능적·서정적·시적 표현을 중시한다. 또한 대상의 본질만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손소영은 “아르테 포베라는 내 삶-작업과 공통성이 많아요”라고 강조한다. 다시 그녀의 작품을 보면, ‘강강수월래’의 춤동작에서 내면적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음이 읽혀지며, 그 순간에 그림 속에서 춤추는 사람들도 신명이 나 있는 것 같다. 독일에서 20년 가까이 거주한 작가는 최근 독일적인 화풍에 함몰되기보다 거기서 습득한 것에 한국적인 방법, 그것도 한국 전통적인 곳을 추가해 창작과 삶의 에너지를 찾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동양에서 태어나 서양에서 한 기간을 보낸 후 다시 동양으로 가는 길을 찾는 여행자 같다. 경기도미술관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초빙 작가로 잠시 귀국한 손소영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