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자기와 서양의 고전 조각상들을 비누로 정교하게 모사해 재해석한 ‘트랜슬레이션’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신미경 개인전이 런던 헌치 오브 베니슨 갤러리에서 2월 16일부터 4월 2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런던 첫 개인전으로 작가가 ‘번역(트랜슬레이션)’ 개념을 처음 발전시킨 것은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무렵부터였다. 작가는 서양의 고전을 베끼고 본뜨는 것을 기본적인 교과 과정으로 삼던 한국의 미술제도 안에서 학습했으며 복제와 모방의 과정 중에 발생하는 문화적 번역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영국으로 이주한 뒤 특정한 문화를 대변하는 대상물이 그것이 놓이는 장소가 바뀜에 따라 발생하는 ‘번역’ 과정에 주목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 ‘트랜슬레이션 시리즈’는 16세기 유럽에 수출할 목적으로 중국에서 생산된 고가의 수집용 도자기들을 원본 자기의 모양 그대로 번역해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이다. 쉽게 녹아내리는 일시적인 성격을 지닌 비누라는 재료로 이러한 값비싼 도자기들을 모사함으로써 원본인 도자기들이 가지는 독창성과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작품들은 이동 때 사용하는 운송용 나무 상자 위에 놓이는데, 그럼으로써 탈 장소화와 변형의 의미가 더욱 강조된다. 또한 ‘고스트 시리즈’는 색유리병처럼 보이는 200개 이상의 반투명 비누 도자기들을 한데 모아놓은 설치 작품이다. ‘고스트 시리즈’는 원본 도자기가 갖는 견고함과 장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원본의 형태만을 남기고 있다. 여기에 비누가 갖는 고유의 향을 통해 관람객은 작품이 놓인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작품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서양의 고전 조각을 작가가 다시 재해석해 만든 초기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