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한국인이 가장 비싼 휴대폰 사는 이유

일부러 값 비싸게 책정하고 보조금으로 깎아주는 ‘봉이 김선달’ 수법

  •  

cnbnews 제214호 이어진⁄ 2011.03.22 09:08:08

광명시에 사는 문명정(28) 씨는 두 달 전 아이폰을 장만했다. 친구들이 너도나도 바꾸는 통에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용한 지 한 달이 넘어 휴대폰 고지서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휴대폰 요금만 9만 원 정도 나온 것. 이전 일반 휴대폰을 쓸 때의 최고 4만5000원 수준과 비교하면 두 배였다. 기기 값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만원대 외산 휴대폰, 한국에 들어오면 왜 70만원대로 껑충 이동통신사들의 과도한 스마트폰 출고가 문제와 함께 보조금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보조금이 포함된 마케팅 비용 논란도 점차 가중되고 있다. 현재 출시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전화기 값만 70만원대. 이전 휴대폰 가격이 대부분 40~50만원 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손안의 PC’라 불리는 최첨단 기기다 보니 비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팔리는 가격대를 보면 한국 국내 가격과 큰 차이가 난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많은 스마트폰들은 해외에서도 인기 속에 팔리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갤럭시S는 전 세계에 1000만대 이상 팔렸다. 갤럭시S의 국내 출고가는 94만9300원(가격 인하 전 기준)이다. 미국 AT&T가 약정 없이 판매하는 갤럭시S 값은 499.99달러(약 57만 원)로, 똑 같은 제품인데 가격 차이는 약 40만 원이나 난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국내 제품에는 DMB 등 국내 소비자들을 겨냥한 기능이 추가됐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DMB 모듈이 도매가로 2만원 안쪽인 것을 감안하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넥서스S의 국내 출고가는 81만4000원인데 미국에서 59만50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LG전자의 옵티머스원의 국내 출고가는 64만9000원, 미국 판매 값은 약 59만5000원이다. 이는 통신사별 이용 요금제와 상관없이 순수한 스마트폰 값만 비교한 결과다.

이런 가격 차이는 국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3월8일 열린 임시국회 에서 “갤럭시S의 국내 가격은 현재 93만원인데 이는 미국보다 비싸다”며 “단말기 가격은 올리면서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산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70~90만 원대의 외국산 스마트폰의 평균 수입가는 4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수입된 341만대 외산 휴대폰의 대당 평균 수입가격은 343달러였다. 원화로 환원하면 38만 원 정도다. 휴대폰에는 별도의 관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수입가격 그대로 국내 이통사나 외국 휴대폰회사의 한국지사에 공급된다. 지난해 국내 출시된 외산 휴대폰 중 가장 많이 팔린 아이폰의 수입가격은 업계 관행상 공개되지 않았지만 관세청 집계를 보면 다른 휴대폰과 평균 수입가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휴대폰, 한국 소비자에 가장 비싸게 팔려” 소비자 단체들은 국내 스마트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서 휴대폰은 이통사가 제조사로부터 구매해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재판매 하는 방식으로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이통사와 제조사가 서로 합의해 핸드폰 값을 비싸게 부풀려 책정해 놓고는 “보조금을 줘 할인해 준다”는 생색을 내고 있다는 것이 소비자 단체들의 주장이다. 한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자료가 없어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핸드폰 제조사와 이통사의 담합으로 국내 스마트폰 값이 비싸게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강하다”며 “신제품 출시할 때 해외 가격과 국내 가격 차이가 왜 이렇게 심하게 나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휴대폰 출고가 부분은 출시 전날에야 결정될 정도로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 사이에 치열한 협상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며 “제조사와 통신사가 소비자들을 현혹하기 위해 출고가를 대폭 높여 놓고 할인 프로그램이란 명목으로 휴대폰 값을 깎아주는 것이라면 그렇게 치열하게 협상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휴대전화 제조사와 통신사가 국내 휴대폰 판매 값을 높게 올려놓은 것도 문제지만, 보조금을 더 받으려면 더 비싼 정액 요금제에 가입하라고 이통사 대리점들이 권유하는 것도 문제다. 얼마 전 KT로부터 아이폰을 구입한 직장인 이 모 씨는 “아이폰을 구입할 때 데이터를 많이 쓰지 않는다는 생각에 4만5천원 요금제를 생각했지만 대리점 측이 ‘월 1만 원 정도 더 내면 휴대폰 값을 2년 동안 10만 원 이상 할인받아 살 수 있다’고 권유해 더 비싼 무제한 요금제로 가입했다”고 말했다. 비싸게 책정된 휴대폰 요금을 ‘보조금’으로 깎아 준다는 명목으로 비싼 요금제 가입을 강제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이미 여러 차례 “한국에서 만드는 휴대폰이 정작 한국 소비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도 ‘터무니없는 휴대폰 값’ 잘 알면서 왜 대책 없나? 정부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마땅한 대처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최시중 위원장 내정자는 3월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내에서 팔리는 휴대폰 값이 수출 가격보다 비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 비싼 단말기 가격이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통신비에 포함되기 때문에 국내 통신비를 높이는 주범이 되고 있어 통신비에서 단말기 가격만 빠져도 통신비가 훨씬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단말기의 국내 값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에 형성돼 있고, 이 문제만 해결해도 소비자가 부담하는 휴대폰 통신비용이 뚝 떨어지리라는 점을 정부 당국이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마케팅비 논란은 작년부터 통신업계의 화두다. 이통사의 마케팅비에는 휴대폰 값 보조금이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논란에 합세하고 있다. 이통사의 보조금을 포함한 마케팅 비용 논란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방통위가 최근 통신요금을 인하하도록 이통사를 압박하고 있지만 아직 또렷한 대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작년 방통위는 이통사들의 마케팅 비용을 총 매출액의 22% 수준에서 올해 20%로 떨어뜨린다는 내용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과도한 보조금이나 불법 마케팅을 조장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휴대폰 업계의 막대한 마케팅 비용 역시 거짓말? 기획재정부 임종룡 제 1 차관은 지난달 통신요금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체 매출 대비 마케팅비 지출은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경우 3.9%, 화장품 업계는 15.2%였던 반면, 이통 3사는 그 비율이 22.7%이나 됐다”며 “다른 산업에 비해 마케팅 비용이 과다하게 높다”고 지적했다. 방통위 최시중 위원장도 거들었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이통 3사의 최고경영자(CEO)와 가진 간담회에서 마케팅비를 거론하며 “통신 3사가 지난해 광고-선전비를 제외하고 순수 마케팅 비용으로 7조5000억 원을 썼는데 올해는 이를 5조원대로 줄여 달라”고 당부했다. 휴대폰 값을 ‘허수’로 잔뜩 올려놓은 뒤 이를 보조금으로 깎아 준다는 명문 아래 과다한 마케팅 비용을 계상하는 방법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내린 격이다. 이런 경고에 대해 이통사 측은 우선 방통위의 가이드라인과 정부의 방안에 충실히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13일 “지난해부터 시작된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통신사들이 충분히 따르고 있다”며 “마케팅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정부의 뜻을 어길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방통위가 제시한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이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권장 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통사들이 보조금 과다 지급 등의 불법 행위를 해도 이를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처벌할 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방통위 관계자는 “여태까지 나온 내용은 행정지도에 지나지 않는다”며 “보조금 지원에 대한 이용자 차별 등의 불법적 행위에 대한 단속 및 제재를 강화한다는 것이지 가이드라인을 어겼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 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통 3사의 마케팅비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가이드라인’ 이외에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태”라며 “마케팅비를 줄일 수 있는 법적 제제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소비자 우롱,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가 현재 국내 휴대폰 공급 방식을 보면 먼저 제조사와 이통사가 해외보다 비싼 값으로 출시하고 이통사는 이를 2, 3년 약정 조건으로 구입하는 가입자에게 ‘보조금’이라는 마케팅 비용을 동원해 정상가로 다시 깎아주며 할인이라고 요란하게 선전해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낱낱이 밝혀졌는데도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정부와 기업이 공모해 물정 모르는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편없는 사정이 된 바탕에는 ‘휴대폰은 이동통신사를 통해서만 구입해야 한다’는 한국의 기형적 공급 형태가 있다. 미국, 일본에서는 이동통신사를 통해 일정 기간 약정 조건으로 핸드폰을 구입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아무 약정 조건 없이 ‘알 휴대폰’만을 구입한 뒤 이동통신사를 선택해 가입하는 것도 가능하게 돼 있다. 그러나 한국도 ‘알 휴대폰’을 살 수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휴대폰 대리점이 ‘알 휴대폰’을 사실장 팔지 않고 있어 이통사를 통한 것 이외의 구입 경로가 전혀 없는 셈이다. 한국에서 만든 휴대폰이 한국 소비자에게 세계 최고 값에 팔리는 이유는 한국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다음 회에는 한국에서는 왜 ‘알 휴대폰’을 거의 팔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를 파헤쳐 본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