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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휴대폰’ 못 사게 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 한국

다른 나라는 ‘블랙리스트’ 제도…한국만 ‘화이트 리스트’로 대기업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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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5호 이어진⁄ 2011.03.28 11:18:48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숫자가 크게 늘면서 해외에서 개인이 휴대폰을 구입해 사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무선 데이터를 이용하는 태블릿PC의 개별 구매도 덩달아 늘었다. 스마트 기기의 확산 속에서 ‘알 휴대폰’을 사서 USIM칩만 껴서 쓰려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있지만 정작 실제로 ‘알 휴대폰’만 사서 쓰기는 힘든 상황이다. ‘알 휴대폰’만 파는 판매점은 거의 없을뿐더러 ‘알 휴대폰’을 사고도 이용하기 까다로운 정책 및 이동통신사들의 방침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국내에서는 ‘알 휴대폰’을 사서 쓰기는 힘든 걸까? 국내에서 ‘알 휴대폰’을 사서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제도’ 때문이다. 화이트 리스트 제도를 알기 위해선 우선 단말기의 고유 식별 번호를 알아야 한다. 휴대폰 단말기에는 제조사가 전 세계의 수많은 휴대전화를 구별하기 위해 만든 휴대폰 고유의 번호가 있다. 이를 IMEI라고 한다. 화이트 리스트 제도는 이동통신사가 자신들의 전산망에 단말기의 IMEI를 등록해 등록되지 않은 단말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제도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만 이 제도가 도입됐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휴대폰은 오로지 통신사를 통해서만 사라”는 소리가 된다. 통신사 “복사폰 등의 우려 때문에 ‘화이트 리스트’ 유지해야” 소비자 “외국처럼 자유롭게 알 휴대폰 사서 쓰게 하라” 이에 반해 외국에서는 화이트 리스트 제도와 반대인 블랙 리스트 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는 불법 폰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이를 블랙 리스트에 올려놓고 이 폰을 쓰지 못하게 할 뿐 나머지 휴대폰은 이동통신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유럽의 경우 이 제도 덕분에 선불 USIM 칩을 사서 단말기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휴대폰 이용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국내 화이트 리스트 제도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아이폰의 국내 출시 이후부터 그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만 아직 당국의 ‘반성’은 없다. 화이트 리스트 제도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2세대 이동통신 시절에 단말기 식별번호와 가입자 식별번호가 구별이 안 돼 단말기 복사가 가능했고, 당시 보안 차원에서 통신사와 제조사들이 두 가지 번호를 관리해 왔다”며 “3세대 이동통신으로 넘어오면서 USIM칩의 등장으로 두 개의 식별번호가 분리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세대 이동통신이 시작된 뒤부터 시작된 블랙 리스트 제도의 도입 요구에 대해서는 방통위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 지난해부터 블랙 리스트 도입 검토를 세밀히 진행 중이고, 올 상반기 중에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속 검토 중이라는 대답일 뿐이다. 화이트 리스트 제도에 대해 통신사 측의 설명은 또 다르다. 현행 제도가 분실에 따른 위험을 막아 준다는 주장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해외에선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찾을 방법이 없고, 휴대폰을 주우면 그대로 USIM칩만 꽂아 쓰면 내 폰이 된다”며 “국내에서는 2세대 이동통신 방식 때부터 화이트 리스트 제도로 휴대폰 분실에 대처하도록 했고, 복사폰 같은 민감한 문제도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분실 휴대폰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있어 다소 번거롭지만 휴대폰의 단말기 고유 번호를 통신사가 운용하는 것이며 이는 소비자를 위해서”라며 “화이트 리스트나 블랙 리스트에 각각 일장일단이 있으며 어떤 쪽이 더 좋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 단체들은 “보안에 대한 우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보안을 이유로 화이트 리스트로 묶어 놓고 소비자의 단말기 선택권을 억압하고 있다”이라며 “보안 문제는 이미 3세대 이동통신으로 넘어오면서 상당 부분 해소됐는데도 단지 분실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통신사를 통하지 않고는 휴대폰을 살 수 없도록 정부-제조사-이통사가 3각의 그물을 짜 놓고, 휴대폰 가격을 고가로 올려놓은 뒤 이들 대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외국은 불법 폰만 잡아내는 블랙리스트 제도, 한국은 모든 폰을 ‘불법 폰’ 취급하는 화이트리스트 제도 적용해 소비자 권리 가로막아 화이트 리스트에 대한 논란은 비단 소비자의 휴대폰 선택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선불 휴대폰의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선불제 휴대폰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선불제 SIM카드를 산 뒤 휴대폰에 장착해 일정 한도액만큼만 이동통신을 사용할 수 있다. 어느 휴대폰이든 쓸 수 있게 하는 블랙 리스트 제도 덕분에 가능하다. 선불 휴대폰은 타 지역을 여행하는 외국인에게도 유리하다. 선불 휴대폰은 휴대폰을 소량으로 쓰는 사람들에게도 1초당 통화료가 일반 휴대폰보다 비싼 대신 기본료가 없기 때문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통신비 절감을 위해 선불 휴대폰 제도를 주요 정책 중 하나로 꼽고 있지만 여전히 통신사업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선불 휴대폰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화이트 리스트가 아니라 자율에 맡기고 문제 있는 휴대폰만 차단하는 블랙 리스트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정부 연구기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21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방송통신정책(제23권 5호)’에 실린 ‘초점: 선불 이동전화 활성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보고서에서 선불이동전화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블랙 리스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ISDI 윤두영 통신정책연구실 전문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블랙 리스트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화이트 리스트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단말기와 분리된 이동전화 본연의 서비스 시장경쟁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을 불편한 제도에 묶어 놓아 대기업들은 소비자의 돈을 ‘뜯기’에 좋은 반면, 서비스 개발은 무시해도 좋은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윤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SK텔레콤과 KT의 경우 USIM칩의 교차 이동은 각 이통사가 출시된 단말기 사이에서만 가능하며, 그 밖의 단말기에 대해서는 대리점을 방문해 IMEI 등록을 한 뒤에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윤 연구원은 “해외에서 적법하게 반입된 단말기를 이용하려면 소비자가 대리점에 찾아가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며 “현재 같은 방식은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문제로는 국내의 전파 인증 제도를 들 수 있다. 국내 휴대폰 이용자는 대개 휴대폰을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구매한다. 대리점에서 파는 휴대폰은 휴대폰 제조사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전파연구소에 요청해 전파인증을 받은 제품들이다. 휴대폰 단말기는 국내 전파법 46조와 57조에 따라 형식 검증과 형식 등록 및 전자파 적합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올해 1월1일부터 제도가 바뀌어 국내 전파인증을 받지 않은 해외 출신 방송통신 기기라도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1인 1대에 한해 반입신고서만 전파연구소에 제출하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작년까지만 해도 외산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휴대폰을 개인이 구매해 들어오면 직접 전파연구소가 지정한 인증업체나 사설업체에 의뢰해 전파인증을 받은 다음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개통 신청을 해야 한다. 인증절차도 번거로울뿐더러 비용도 36만 원 정도나 들어 부담스러웠다. 아이폰 도입 이후 힘겹게 한발씩 물러나지만 소비자 손발 묶어 놓고 비싼 값 받는 국내의 제조사-이통사-정부의 삼각연대는 아직도 굳건 유럽인들이 거의 아무 휴대폰이나 장만해 USIM칩만 끼우면 바로 개통해 쓸 수 있는 것에 비교한다면 한국의 휴대폰 제도는 거의 ‘전근대적 쇄국정책’ 아니냐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래서 현재의 반입신고서 제출 의무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 들여올 수 있는 휴대폰을 1인 1대로 제한한 것도 스마트 기기 열풍에 비춰 본다면 지나치게 제한적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알 휴대폰’으로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제약은 USIM칩 잠금장치(락)다. 3세대 이동통신을 시작하면서 USIM칩이 휴대폰에 장착돼 있지만 ‘락’을 걸어 놓아 이동통신사 이용에 제한을 뒀었기 때문이다. 국내 이용자들의 빗발친 항의로 2008년에야 USIM칩 락이 개방됐고 작년 7월에는 이동 절차마저 간소화했지만, 현실적으로 USIM칩을 통한 가입자의 이동은 극소수다. 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USIM칩 락을 해제하고 이를 바꿔 끼면 음성통화, 영상통화, 문자 수신 등 기본적인 기능만 제공된다. 방통위 관련 규정은 USIM칩 이동을 해도 음성-영상 통화, 발신자 번호 표시, 단문 메시지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장문메시지(MMS)와 데이터 전송은 규정에 포함돼있지 않다. 그 이유는 사업자간의 MMS 서버 호환 방식이 맞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는 USIM칩 이동은 하지 말라는 정부의 지시사항이나 마찬가지고, 굳이 하겠다면 ‘긴급통화’나 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요구 위에 방통위의 방침이 군림하며, 소비자들의 빗발치는 원성에는 당국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아이폰 도입 뒤 한국의 이동통신 제도가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보면 꼭 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보는 듯하다. 당국은 탄압하고 국민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한발 한발 고통스럽게 민주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다. 소비자 시대는 왔지만 한국 소비자는 여전히 목이 탄다. 알 휴대폰 구입 문제만 놓고 봐도 한국의 대기업-정부가 짜놓은 그물망은 소비자의 숨통을 조인다는 현실을 알 수 있다. USIM칩이란? USIM칩은 가입자의 정보를 탑재한 식별모듈을 말한다. USIM칩은 3세대 이동통신의 단말기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손톱만한 크기의 칩으로 가입자에게 인증과 요금 부과, 보안 기능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를 저장한 것이다. USIM칩은 간편하게 휴대해 단말기 종류나 통신 사업자에 구애받지 않고 국제 로밍을 포함한 음성 통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장점이다. USIM칩을 도입한 유럽은 단말기만 있으면 USIM칩을 연결해 편리하게 휴대폰을 바로 개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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