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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상상의 환상곡

민병헌 사진전, 한미사진미술관 3.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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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6호 박현준⁄ 2011.04.04 14:16:44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사진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기초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직접적인 감성적 소통의 매개로 활용되어 왔다. 처음 사진이 등장했던 19세기에 움직임을 담은 사진이 시간을 재구성했다면, 그 다음 세기에는 세밀한 입자와 극명한 심도가 우리 시야의 공간을 분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시대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 변주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민병헌은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 만큼 강한 집중력과 흡입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다.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섬’ ‘잡초’ ‘깊은 안개’ 그리고 ‘숲’에 이르기까지 민병헌은 전형적인 자연의 소재들을 다뤄왔다. 평범한 소재를 사유화하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 과정이다. 그의 작품에서 흑백의 계조는 평범과 비범, 일반과 개별을 구분하는 중요한 표현 요소이다. 사진이 흑백에서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회색조로 전환된 세상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병헌의 흑백사진에 담긴 자연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자연을 마주하고, 나만의 자연으로 만들기 위해 교감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재단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고, 인화지 위에서 한 번 더 은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마다 생생하다. ‘폭포’ 연작 중의 많은 작품은 수직으로 하강하는 물줄기를 중립적인 셔터 스피드로 촬영해서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동감을 나타냈다. 운동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물줄기에 집중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물의 흐름과 반대로 내 몸이 끌어올려지는 듯한 착시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는 폭포의 부분을 과감하게 떼어내는 프레이밍을 통해 본래 찍혀진 때와 장소로부터 사진을 분리시켰다. 몽실몽실한 거품의 형태는 가변적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촉각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의 물거품은 금세 손끝과 발끝을 간질인다. 이러한 촉각적 경험에 청각적 감흥이 더해지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갔던 소박한 폭포나 순교자가 몸을 던지던 영화 속의 장엄한 폭포, 홀로 득음을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은밀한 폭포가 모두 나의 것이 된다. 시각으로부터 시작되어 촉각과 청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경험이야 말로 아이디어와 개념이 우선하는 작품들 사이에서 민병헌의 풍경 사진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일 것이다. 과거의 민병헌 작품은 광택이 없는 인화지를 사용해서 회화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었는데, 근작들은 대부분 표면 광택이 분명한 인화지에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기술적 엄정성이 더욱 두드러져 심지 굳은 기개까지 느껴진다. 그를 쉼 없이 도전하게 하는 사진. 자연과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스타일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치열함을 아는 사람만이 넘어섬의 경지를 논할 수 있지 않겠나. 그 물속에 우리 모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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