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 요금이 국제 평균과 비교해 비싸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너무 비싼 휴대전화 요금’에 대해 이미 소비자들은 오래 전부터 시정을 요구해 왔지만 독점 체제를 갖춘 국내 대기업 계열 이동통신사들은 귓등으로 스쳐들었으며, 최근 정부가 이동통신 요금을 낮추라는 압력을 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통사들은 “이런 저런 측면을 비교하면 국내 요금이 절대 비싸지 않다”거나 “오히려 저렴한 편”이란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이동통신 요금이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는 데는 이통사와 대리점들의 교묘한 상술도 한 몫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통사가 지원해주는 단말기 할인 금액이 줄어드는 대신 자유 요금제로 변환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히 숨겨 놓기 때문. 이통사와 대리점이 거의 모든 소비자들에게 “비싼 정액 요금제를 쓰지 않으면 비싼 출고가 제값 그대로 받고 사야한다”며 사실상 강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두 소비자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강매’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를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을 구입하러 대리점을 찾은 A씨. 일 때문에 음성통화를 한 달에 400분 이상 쓰고 회사와 집에서는 와이파이를 주로 쓰는 그에게는 ‘데이터 통신은 조금만, 음성통화는 아주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리점 직원은 그에게 “그런 요금 플랜은 없다”고 설명했다. 대리점에서 추천하는 요금은 음성통화와 데이터 요금을 합쳐 한 달에 7만 원 이상 나오는 것밖에 없다는 소리였고, 이는 현재의 핸드폰 사용 요금보다 최소한 2만 원 이상이 더 나오는 요금제였다. B씨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음성통화도 많이 안 쓰고, 집과 회사에서는 와이파이를 쓴다. 그러니 굳이 사용량이 무제한으로 배정되는, 값만 비싼 고액 정액제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래서 음성통화도 조금, 데이터 통신도 조금만 사용해도 되는 자유 요금제로 살 수 있는 보급형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B씨는 대리점에서 추천한 정액 요금제가 아닌 음성통화 표준 요금제에, 월 만원에 500MB를 쓸 수 있는 데이터요금제에 각각 가입했다. 보급형이라 성능이 조금 떨어지지만 한 달 요금이 4만 원 정도 밖에 안 나오므로 아쉬운 대로 쓰고 있다. 문제는 B씨처럼 영리하게 스마트폰을 골라 쓰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정액요금제가 아닌 다른 요금제로 나중에 변경이 가능하더라도 아예 잘 알리지 않고 ‘정액요금제’만을 강요하는 상황이다 보니 보통 소비자들은 그냥 그런 줄 알고 비싼 고액 정액제에 가입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스마트폰 사용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고액 정액 요금제에 가입한 실정이다. 스마트폰 이용자 10명 중 1.5명만 자유 요금제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스마트폰 가입자 중 84%가 정액 요금제에 가입했다. 10명 중 8명이 넘는다. 5만5000원 이상의 고액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비율도 52%나 된다. 3만5000~4만5000원 정액 요금제 가입자는 32.8%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4만5000원 요금제는 대부분 500MB 정도의 데이터 통신량을 제공하고 음성통화는 200분, 문자메시지는 300건을 기본으로 제공하며, 이를 초과하면 고액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구조다. 처음 이런 정액요금제가 나왔을 때는 획기적으로 인식됐다. 과거 일반 요금제로 500MB 데이터 통신을 하려면 2만 원 이상을 내야 했던 것과 비교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면서 정액 요금제에 부담을 느끼는 사용자들이 늘었다. 사용자 패턴에 맞춰 다양한 요금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대리점에서는 ‘정액 요금제’만을 전적으로 권하고, 자유 요금제를 찾는 손님에게는 “그러면 단말기 할인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겁주면서 비싼 정액 요금제 가입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히 음성통화량이 많은 사용자들에서 정액 요금제에 대한 불만이 높다. 높은 음성통화량을 기준으로 요금제를 고르다 보면 기본료가 한 달 6만 원 이상으로 껑충 높아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정액 요금제에 가입하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음성통화를 주로 쓰는 사람들은 한 달에 고작 100MB 남짓만 데이터 통화를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업 또는 마케팅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스마트폰을 사지 말라’는 소리와도 같다. 자유요금제로 가입하면서 살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긴 있지만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은 없고 보급형 스마트폰들이 대부분이라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음성통화 많이 쓰는 이용자는 ‘요금 폭탄’ 맞기 쉬운 구조. ‘자유 요금제’ 쓰겠다면 품질 떨어지는 보급형 스마트폰만 주니… 보통 자유요금제로 살 수 있는 스마트폰은 보급형이 주를 이룬다. 12개월 약정에 자유롭게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어 좋지만 값싼 보급형 스마트폰만 장만할 수 있는 게 단점이다. 3월 29일 현재 SK텔레콤에서 자유요금제로 살 수 있는 스마트폰은 모토쿼티, HTC의 디자이어 팝 정도다. KT에는 스마트볼, 익스프레스 뮤직폰 등이 있다. 아이폰4, 갤럭시S 등과 비교하면 모두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D씨는 “아이폰이나 갤럭시S 같은 좋은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싶지만 음성통화량이 많아 고민 중”이라며 “자유요금제가 적용되는 스마트폰을 살펴보고 있지만 전화기 성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통사-대리점은 ‘자유 요금제’ 자체를 알려 주지 않아 소비자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스마트폰을 쓴다고 해서 꼭 스마트폰에 맞춰진 정액 요금제를 쓰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단말기 할인이 되면서도 다른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다. KT 관계자는 “아이폰 등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음성통화량이 많고 데이터 사용량이 적은 사람들은 맞춤 조절 요금제를 사용하면 된다”면서 “이런 경우에도 단말기 할인이 그대로 적용돼 부담 없이 요금제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도 “더블 할인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일반 요금제로 변환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렇게 ‘규정상으로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 대리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통사와 대리점들은 매출 때문에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요구하는 소비자 이외에는 자유선택 요금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자유요금제를 골라 쓰는 사람이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의 16%밖에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통사 대리점에서 일하는 C씨는 “이제까지 스마트폰을 팔면서 일반 요금제로 구입하는 고객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스마트폰을 개통하겠다는 고객이 오면 ‘무조건 정액요금제로 해야 단말기 할인이 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이통사의 압박과 대리점의 매출 때문”이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는 또 “현재 이통사들이 정액요금제로 개통시키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무제한 요금제를 보다 많이 가입시키라고 요구한다”며 “무제한 정액 요금제에 가입시켜야 대리점이나 이통사의 마진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단체는 “선택권 넓혀라” 요구하고 정치권에서도 정액요금제 논란이 뜨겁지만 정부는 “대책을 계속 구상 중” 소비자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스마트폰 요금제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어느 대리점을 찾아가도 일반 요금제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관련 사실을 꼭꼭 숨겨 놓고 소비자들에게 알아서 찾아 쓰라는 것은 소비자 기만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가입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할 뿐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국내 이통사의 모습”이라며 “이통사들이 정액 요금제를 고집하는 것은 이윤이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정액 요금제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성동 의원은 3월 15일 YTN라디오 ‘강지원의 출발 새 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이통사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스마트폰 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싼 정액 요금제 대신 소비자가 사용한 만큼만 요금을 낼 수 있게 음성, 데이터, 문자에 각각 요금을 책정해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현재 자신이 가입한 스마트폰 플랜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껏 돈을 내기만 하고 허용된 사용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분량만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정책위원장도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재 스마트폰 요금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횡적 체계이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음성을 많이 쓰지만 데이터는 안 쓰는 사람, 문자는 많이 쓰지만 음성은 안 쓰는 사람 등 사람마다 소비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 맞춤형 요금제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료가 비싼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덩치 큰 정액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반강제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며, 이런 사정만 시정해도 통신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같은 스마트폰 정액요금제 논란에 대해 방통위 측 입장은 “스마트폰 요금제 다양화 방안을 구상 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29일 방통위 관계자는 “기존 스마트폰 요금제가 어찌 보면 정액 요금제 하나뿐이라 이용자의 선택권을 상당히 제한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용 패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 중에 있다”며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방통위가 실제 요금제 설계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방향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제약이 있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