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옆 소박한 마을, 화순읍에 위치한 양문기 작가의 작업실. 돌을 깎고 갈며 정을 치는 소리가 하루 종일 울린다. 매일 아침 정시에 작업실의 문을 열고 돌과 마주하며 양문기 작가의 하루가 시작된다.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는 종일을 작업에 몰두한다. 그가 작업대에서 자리를 비우고 숨을 돌릴 때는 잠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는 짬 정도다. 양문기 작가가 돌과 함께 한 세월도 어언 20년. 미대생 2학년 시절 처음 돌을 접한 그는 그 뒤 지금까지 줄곧 돌과 함께 세월을 보내왔다. “돌은 매력 그 자체”라는 양문기 작가. 돌과 천생연분이다. “돌은 참 매력적이죠. 무거움, 단단함, 까칠함부터 시간의 흐름으로 생겨난 두루뭉술한 번들거림까지 다양한 질감을 담고 있죠. 이러한 매력에 끌려 지금까지 돌을 손에서 놓지 못했나 봅니다.” 사실 그는 요즘 보기 드문 ‘젊은 돌 조각가’다. 전통적 재료라는 인식이 굳어진 오늘날, 언제부턴가 돌을 다루는 젊은 작가를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양 작가는 묵묵히 돌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새겨 넣는다. “제 작업은 돌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바꾸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돌로는 현대미술을 논하기에 부족하거나 어렵다는 보편적 인식을 뒤엎고, 소재의 특성을 극대화 시키면서도 시대에 맞는 감각을 접목하는 시대성을 논하고 싶었어요.”
흔히 ‘돌 작품’이라고 하면 원로 작가의 무게감 느껴지는 중후한 작품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양 작가의 작업은 그 어떤 다른 소재의 작업보다 신선하고 독특하며, 해학적인 모습으로 이목을 끈다. 양 작가는 명품 가방에 빗댄 인간의 욕망을 돌로 표현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고개가 갸우뚱거리지만, 참신하고 해학적인 재미가 물씬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작업 속에서 가방은 일상의 소품을 넘어 욕망을 대변하는 개체다. 그가 만든 돌 가방은 묵묵히 살아가는 삶 속에 문득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돌의 무게만큼이나 쉽게 떠나지 못하는 욕망의 무게에 대한 상징이다. ‘동경의 대상’ ‘성공의 상징’을 그는 명품 로고가 새겨진 돌가방을 통해 이야기한다. “2004년부터 개인적인 이유로 가방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단순 물건으로서의 가방을 넘어 가방이 가진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됐죠. 가방이 주는 의미와 상징, 돌이 주는 단단함과 부동성, 이 두 소재로 내 삶의 일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을 표현하고 싶어 시작한 작업입니다.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그러면서도 돌처럼 무겁게 현실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 유동성이 강한 가방과 부동성의 돌, 이 두 물성과 의미가 만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합니다. 쉽게 들 수도, 가질 수도 없는 무거운 돌 가방은 우리의 삶 속 욕망과 닮아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 돌의 세월을 음미하기도 하고 깎고 쳐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공통된 욕망을 명품 로고라는 풍유를 통해 새기는 것이죠.” 돌은 세월을 담고 있다. 특히 자연석은 다듬어지지 않은 시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양 작가는 돌이 전하는 세월의 자연스러움을 작품에 담기 위해 ‘자연석’을 사용한다. “필요한 만큼 인공적으로 싹둑 잘라다 쓰는 산 바위들은 한 자리에 침잠해 있는 시간이 비교적 긴 탓에 입자 등이 일률적이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 덜 매력적이죠. 반면 땅에서 굴러다니는 오석(烏石), 냇가의 돌 같은 자연석은 스스로 수많은 내력과 과거를 들려주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생명력, 내력, 행성, 용암 같은 원초적 시간성의 경이로움 때문에 저는 자연석을 고집합니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그저 그런 자연석’을 소재로 갖고 와 그 속에 축적된 시간성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죠.”
“채석장에서 규격에 맞춰 잘라낸 돌보다는 냇가에 굴러다니는 자연석에 담겨진 돌의 세월 이야기를 작품이 담고 싶어요“ 그는 늦가을에서 초봄에 강가와 냇가,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석을 채집한다. 자연스럽다고 해서 모든 돌이 그의 작업대에 올라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태, 색깔, 균열 등을 꼼꼼히 살피며 신중히 고른다. 이러한 수고스런 과정을 거치며, 자연석에서 가방의 형태를 도출하고 재구성한다. 완벽한 가방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석의 형태를 유지시키면서 한쪽 면에 명품 가방의 형태를 새겨 넣는다. 자연석 그대로의 모습에 돌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으며, 다듬어진 돌의 표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명품 로고를 새기는 것이다. “가방의 형태를 잡아가고, 깎아내고, 광을 내는 과정을 거치며 돌은 마침내 나의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품으로 완성된 돌은 마치 감사의 표현이라도 하듯 입자 하나하나, 무수한 층의 결, 고귀한 색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세월을 저에게 들려주는 듯해요.” 그의 손에서 다듬어진 돌은 그의 세계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대변하며, 그가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 가치를 새롭게 부여한다. 즉 행위와 그 결과물을 통해 그 스스로의 변화를 모색한다. “제게 있어 작업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같습니다. 작품은 눈길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샤워를 하고 단정한 매무새로 서 있는 것이지요.” 한국과 미국을 넘어, 향후 유럽까지 무대를 펼치고 싶다는 양문기 작가. 앞으로 또 어떤 자연석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자연석과 그의 무궁무진한 만남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