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큐레이터의 가명 치고는 참 별나다. 주인공은 서울 연남동의 미술 공간 플레이스막의 이지혜(28) 큐레이터. 왜 막걸리라는 가명을 쓰냐는 질문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호칭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막걸리였다”며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큐레이터라면 뭔가 고상할 것 같다. 학력도 높고 외국어도 잘하고, 하이힐에 드레스를 차려 입고 등등. 그러나 ‘막걸리 큐레이터’는 다르다. 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막걸리는 그녀가 정한 가명처럼 편안한 ‘친구’ 같다는 느낌을 준다. “어깨에 힘을 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큐레이터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고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요.” 큐레이터가 무슨 일을 하는가? 큐레이터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가만히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시할 작가를 찾고, 섭외하고, 작가와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의 방향을 잡는다. 작품이 어떤 분위기냐에 따라 직접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고, 작품 설치를 돕느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밖에 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보도 자료를 작성하고 온-오프라인으로 홍보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모든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있어요. 아직 이 분야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직접 발로 뛰고 있습니다.” 원래 미대에 진학해 작가가 되고 싶었던 막걸리는 사정상 미대를 포기하고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일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문화예술경영에 대해 공부하면서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유기태 플레이스막 대표를 만났고 현재에 이르렀다. 당찬 막걸리에게 목표가 있다. 바로 갤러리를 지키는 단순한 큐레이터가 아니라 예술 공간이 지역에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쑥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세탁소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리다. “권위를 고집하며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게 제 역할이 아니겠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작가들이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주는 역할도 큐레이터가 해야 한다고 봐요. 보다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돕고 희생하는 정신, 그런 정신을 가진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