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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크고 착한’ 상품은 모두에게 좋다?

“저가 기획 상품이 실제로는 ‘속좁고 무서운’ 상품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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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9-220호 정초원⁄ 2011.05.02 14:15:36

지금 유통업계는 ‘통큰’ 전쟁이 한창이다. 최근 롯데마트는 8만 원짜리 ‘통큰 자전거’를 내놨다.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중가의 절반 값’에 파는 자전거 3만대를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이마트도 접는 자전거를 정가보다 1만원 인하한 7만9000원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에 롯데마트는 발끈했다. “우리가 접이식 자전거 기획을 크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이마트가 기존에 팔던 자전거 가격을 일부러 내린 것”이라는 불만이었다. 이마트는 정색을 했다. “지금은 자전거가 가장 잘 팔리는 시즌이다. 롯데마트를 경계한 게 아니라 시기에 따른 판매 전략을 취했을 뿐”이라는 반박이었다. 이들 대형마트의 기싸움을 꼴사납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 소비자들은 자전거를 싼값에 사게 됐으니 오히려 좋다는 입장이다. ‘통큰 마케팅’의 시초는 지난해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9월 신세계 이마트는 지름 45㎝짜리 초대형 피자를 1만1500원의 저렴한 가격에 내놨다. “영세 피자가게를 죽이는 대형마트의 횡포”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뒤이어 롯데마트도 작년 말 5000원짜리 치킨을 내놔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 유명한 ‘통큰치킨’이다. 당시 치킨업체들의 반발로 판매는 7일 만에 끝났지만, 파장은 4개월여가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통업계에 남아 있다. ‘통큰 마케팅’이라는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통큰치킨의 본질은 단순히 싸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당시 새벽 6시부터 줄을 서 한정판매분을 손에 넣은 한 소비자는 “시중에 유통되는 1만원 중반대 치킨보다 양이 훨씬 많은 것 같다”고 흥분의 목소리를 냈다. 양 뿐만 아니라 질도 좋았다. “이 정도면 어느 프랜차이즈 치킨에 뒤지지 않는 맛”이라는 후기가 각종 인터넷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으로 번져나갔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소비자들의 불신을 한 번에 뒤집는 반응이었다. 판매를 개시한 롯데마트 서울역점에는 통큰치킨을 원하는 손님들의 줄이 새벽부터 길게 늘어섰고, 언론사 취재진이 그 진풍경을 담아냈다. 통큰 상품에 소비자는 열광하고, ‘안 사면 손해’라는 불안감도 안겨 주지만, 그 이면에는 대형 마트의 횡포에 떠는 소형 납품업체의 고통도 숨어 있어 ‘5000원짜리 닭’은 통큰치킨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롯데마트의 야심작에 열광한 이유는 단순했다. 가격이 파격적이되 품질 또한 기존 제품과 비슷하거나 더 좋았다는 평 때문이었다. 상품에 대한 적정 수준의 가격을 지불한다는 교환심리를 넘어, 이 상품을 사지 않으면 도리어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다는 위기심리까지 소비자들 사이에 작동됐다. 이는 홈쇼핑이나 소셜커머스의 구매욕구 자극 원리와 비슷하다. 시중에서 같은 품질의 상품을 1만원은 줘야 살 수 있는데 ‘통큰 마케팅의 광장’에서는 절반 값이니 못 사면 손해라는 착각이 번지는 셈이다. 이런 심리는 통큰 마케팅이 성공할수록,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수록 더욱 확장된다. 통큰 마케팅은 더욱 통 큰 소비를 부른다. 과거에 한국 소비자들은 횡행하는 과대 포장-광고에 속고 또 속았다. 그런데 ‘진짜배기 물건’을 대단히 싼 값에 판다니 ‘사기만 당해온’ 한국 소비자들로선 혹할 수밖에 없다. 고객들의 이런 기호를 잡기 위해 홈플러스는 ‘착한’이라는 또 다른 마케팅 슬로건을 내세웠다. 뚜껑을 열어보면 실망만 잔뜩 안겨주는 그간의 저가-저질 상품이 아니라, 질도 착하고 가격도 착한 상품을 내세워 소비자를 달래겠다는 것이다. 홈플러스 이승환 회장은 지난 4월17일 ‘e파란 어린이 축구클럽’ 창단식에서 "나는 착한 게 좋다. 직원들도 착해야 한다. 지난 3월 컴퍼니컨퍼런스에서도 난 착한 서비스를 강조했다. 모든 서비스는 착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과 실행은 항상 다른 법일까. 일부 ‘진짜’ 통큰 마케팅도 있지만 과거처럼 겉무늬만 통근 상품도 잇달아 물의를 일으켰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19만 원대 착한 모니터를 출시했지만 스피커가 내장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아 거짓광고 논란을 겪었다. 이마트도 통큰 마케팅의 유사 전략으로 “9000원대 저가 청바지를 5백만 개 준비했다”고 광고했지만 실상은 준비 물량이 37만개에 불과해 ‘광고만 통 컸음’이 들통 나기도 했다. 연이어 뒤통수를 맞은 소비자들은 열었던 마음을 다시금 닫으며 한발 물러났다. 게릴라식으로 진행되는 저가 마케팅의 이면에 어떤 유통 구조가 숨어 있는지 정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5980원짜리 생닭을 1000원으로 판매했던 홈플러스 착한생닭 행사 당시, 양계 농가들은 “현재 병아리 한 마리가 800원이므로 생산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덤핑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큰 마케팅 경쟁이 벌어지면서 질좋은 저가 상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일부 ‘광고만 통큰’ 경우도 적지 않아 대형 마트 입장에서야 손해를 보더라도 미끼 상품을 내걸어 더 큰 마케팅 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영세업자나 생산 농민이 다친다는 결론이다. 선진국에서 착한 소비, 공정 소비 운동이 일어나듯, 한국에서도 통큰 또는 착한 상품에 열광만 할 게 아니라 전체를 살피는 소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월 롯데마트가 출시한 통큰두부는 기존 두부보다 3배 크면서도 가격은 1500원으로 저렴했다. 그런데 이 두부를 제조한 삼영식품 측은 얼마 후 이마트로부터 두부 납품 거래를 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통큰 마케팅으로 주목받고 있는 롯데마트에 힘을 실어준 납품 업체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었다. 이마트 측은 한시 기획 상품인 통큰두부와 기존에 납품되던 일반 삼영 두부를 비교하면서 “우리한테만 비싸게 공급해 거래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이에 삼영식품은 통큰두부만큼 싼 가격으로 이마트와도 기획 상품(1800원/1.2kg)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울면서 얘기해 봤어요. 봐 주면 안 되냐고. 그런데 그렇게 못한대요.” 지난 2월 19일 SBS뉴스에 보도된 삼영식품 임원의 말이다. 실제로 이마트는 한동안 삼영식품 두부를 전면 판매 중단했다가, 협의 과정을 거쳐 현재 판매를 재개했다.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마트들이 고래 싸움을 하는 사이에 납품업체들의 등이 터지는 현상이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소형 업체들은 현재 고민 중이다. 거래 마트가 요구하는 ‘통큰 단가’를 맞춰야 하는 한편, 경쟁 마트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저가 기획 상품을 단호히 거절할 수도 없다. 소수 재별계 업체가 유통망을 완전 장악한 국내 시장에서 어느 한 곳에라도 밉보이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통 크고 착하다는 상품이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각박하고 무시무시한’ 상품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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