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 차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또 다른 생명나눔운동의 한 예는 공공장소를 비롯한 곳곳에 자동심장충격기(자동제세동기)를 구비하는 일이다. 병원에만 있던 대형 심장 충격기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소형 자동심장충격기까지 진화됐다. 이 작은 기기는 급성 심장정지, 심장박동 등으로 심장이 멎은 심장마비 상태에서 가슴에 전기충격을 가해 심장기능을 소생시키는 노트북 사이즈 정도의 작은 자동 기기다. 사용하는 방법이 쉬워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라도 심폐소생술과 함께 심장마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기다. 드물긴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장소에서도 볼 수 있다. 의학의 발달을 실생활에 응용해 재난을 준비하는 좋은 예다. 자동심장충격기(자동제세동기) 보급 운동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의사인지라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를 돌보는 일이 거듭되며 습관적으로 기내방송이 시작되면 긴장한다. 기내에서 응급환자를 돌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행기에 비치된 자동심장충격기를 비롯한 의료기기와 약들을 점검하는 습관까지 갖게 되었다. 그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FAA(미국 연방 항공청) 규정에 따라 자동제세동기가 탑재돼 있지만 국내용 비행기에는 탑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도처에서 확인되는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은 하늘에서도 반복됐다. 미국, 일본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공공장소와 호텔 등 적재적소에 설치된 자동제세동기를 보며 매우 부러웠다. 평소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필자는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자동제세동기(AED)만 보면 꼭 사진을 찍어 스크랩해 둔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다중 이용시설에 자동제세동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안했고, 그를 가능케 하기 위해 소위 ‘선한 사마리아 법’을 제안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게 통과시켰다. 공항이나 기차역, 기차 안 등에서 자동심장충격기를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호텔의 서비스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즈음인지라 호텔 이야기를 하나 해 본다. 호텔들은 화려한 치장에 대단한 투자를 하면서도 생명 존중에 대한 무지 때문인지 자동제세동기에 대해서는 거의 투자를 않는다. 몇 호텔이 작은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호텔이야말로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이며, 백화점, 골프장 등도 마찬가지다. 인파가 많이 모이는 고급시설에 자동제세동기 한 대가 없는 모습을 보면 그 서비스 질이 보이는 듯하다. 2002년 샌디에고 힐튼 호텔의 한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부의 아버지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났다. 주위 의사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자동제세동기를 애타게 찾았으나 없었다. 그 아버지는 결국 사망했다. 그 후 미망인과 가족들이 자동제세동기를 공공장소에 설치하고 기부하자는 운동을 샌디에고를 중심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샌디에고에서는 여러 생명이 살아났다. 샌디에고 쉐라톤 호텔에서 과거 5년간 7번의 심장마비가 일어났는데 그 중 6명이 살아났다. 대단한 결과다. 샌디에고 통계에 따르면 심장마비 발생 뒤 바로 주변 사람들이 자동제세동기를 사용한 경우 74%가 소생했지만 응급구조대원이 달려와 제세동기를 작동한 경우는 4%만이 소생했다. 또 미국의 한 호텔 17층에서 열렸던 결혼식 피로연에서 호텔 종업원이 심장마비를 일으켰는데, 1층의 자동제세동기를 올려 보내 의사인 신랑과 그의 의사 친구들이 심폐소생술과 함께 자동제세동기로 4번 충격을 가해 소생시켰다는 드라마 같은 사건도 있었다. 필자는 호텔에 갈 때마다 자동제세동기가 있는지 묻는다. 일본엔 아주 작은 온천여관에도 자동제세동기가 있다. 이제 우리도 결혼식, 연회, 큰 회의를 할 때 그곳에 자동제세동기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질문해야 호텔, 골프장, 헬스클럽, 백화점들이 자동제세동기를 비치하기 시작할 것이다. 샌디에고처럼 자동심장충격기 기부운동도 가능하다. 지하철역, 박물관, 공연장 등 모든 공공장소에, 학교에, 혹은 아파트 단지에, 혹은 집에 이 작은 생명소생기를 비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질적 도움을 주니 좋은 혼수품이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