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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속의 나’ 풍경

김명식, 화폭에 담은 자연과 공동체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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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1호 왕진오⁄ 2011.05.09 14:06:50

가깝고도 먼 나라. 그리고 한국의 영원한 경쟁 상대. 그리고 최근에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으로 세계로부터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는 일본. 이 나라를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으로 채운 그림들이 5월4일부터 17일까지 인사동 선화랑에서 펼쳐진다. ‘고데기’ ‘East Side Stories’ 등의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김명식 작가가 지난 1년간 일본 규슈산업대학 교환 교수로 재직 중 일본 열도를 종단하면서 담아낸 풍경화들이다. 서양화가 김명식의 영감은 언제나 자연에서 발원된다. 자연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지만, 그 자연이라는 것도 각각이 경험하는 한계 내에서의 것이기 마련이다. 작가의 자연은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청정무구의 자연을 벗 삼으며, 사색하고 관조하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다. 작가에게 화두가 되는 자연은 인간이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원시적 자연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으며, 상당 부분 문명과 어느 정도의 긴장 관계 속에 있는 자연이다.

누가 뭐래도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아름다운 상생의 삶을 누리는 이상을 꿈꾸는 예술가이다. 고데기 시리즈에서 보듯 작가는 난개발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고향의 자연을 그리워하면서,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담담하고도 비장한 필치로 그려내곤 했다. 상실이 주는 아픔은 담장 안에 웅크리고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들조차도 그립게 만든다. 개발 이후 그 어떤 고대광실의 안락함으로도 달랠 수 없는 상실감이야말로 이름도 없이 피어 있는 꽃들에 애착을 품게 했던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 배경 때문일까. 평온한 대상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배경의 표정들이 예사롭지 않다. 내면에서 분출하는 무언가를 애절하게 토로하는 듯, 뭉클하게 잡히는 것이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작가가 교환교수로 뉴욕에 체류하면서부터 ‘이스트사이드 스토리’ 연작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작가의 화면에는 보다 도시적인 이미지들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자연 위에 터를 잡은 문명 혹은 공동체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작가도 피력한 것처럼 ‘고데기’ 연작이 뜰 안의 자연이었다면,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뜰 밖의 자연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자연 자체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생략되거나 숨겨지지만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자연스럽게 인종 혹은 지역 문제로 옮겨진다. 비슷한 양식의 집들이 줄지어져 있는 가운데 집들의 표정은 의인화되어 있다.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사는 환경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하나의 자연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동서, 빈부, 노소, 흑백이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이상을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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