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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나이 잊고 사는 ‘뮤지컬계 안성기’ 서범석

30대의 고민 유쾌하게 풀어낸 2인극 ‘미드썸머’에서 한심男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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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2호 이우인⁄ 2011.05.16 15:04:39

뮤지컬계의 안성기, ‘범사마’로 불리는 뮤지컬 배우 서범석(41)이 한심한 남자로 변신한다. 4월 29일부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내 초연 중인 연극 ‘미드썸머’에서 서범석은 한심한 인생을 사는 지하조직원 밥 역을 맡아 ‘4차원 여배우’로 불리는 예지원과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새롭게 창작한 2인극 ‘미드썸머’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남녀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뒤 겪는 우연의 연속과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2008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처음 소개된 이 연극은 만 35세 동갑내기 남녀의 방황과 고민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과 두려운 심리를 진솔하고 코믹하게 풀어낸다. 이석준과 함께 밥 역할에 더블 캐스팅된 서범석은 ‘지킬 앤 하이드’ ‘라디오스타’ ‘모차르트!’ ‘노트르담 드 파리’ ‘서편제’ 등의 대표작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진중한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로 무대 위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미드썸머’에서는 그동안 구축해온 진지함을 벗고 허점 많은 모습으로 관객을 맞는다. 꼬질꼬질한 얼굴,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초록색 트레이닝복과 회색 재킷을 매치한 무감각 패션 등은 이 연극에서 서범석이 보여주는 밥의 첫인상이다. ‘미드썸머’가 개막하고 일주일 뒤 분장실에서 서범석을 만났다. 그가 뮤지컬이 아닌 연극 출연을 결정한 이유와 허점투성이 남자를 연기하는 소감, ‘미드썸머’ 뒷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그동안 아버지를 주로 연기하다가 로맨스가 있는 연기는 오랜만이지 않나요? “무슨 소리입니까? 아버지는 ‘서편제’와 ‘모차르트!’ 딱 두 번밖에 안 했어요(웃음). 그리고 이번 작품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이뤄지거나 진한 키스신이 있거나 그런 보통의 로맨스 작품과는 다르답니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편해요.” -일반 공연은 무대 뒤로 등장과 퇴장이 이뤄지는데, ‘미드썸머’는 특이하게 출입구로 합니다. 어색하진 않나요? 대기하면서 무얼 하죠? “어색하진 않아요. 대화는 하지 않지만 등장하기 전에는 ‘많이들 오셨나?’ ‘즐겁게 보셔야 할 텐데’, 퇴장할 때는 ‘재밌게들 보셨나’ 하는 정도죠.” -공연한 지 일주일 정도 됐는데요, 연습할 때와 공연하면서 다르게 느낀 점이 있습니까? “연습할 때는 관객이 없으니 대사를 어떻게 쳐야하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몰랐는데요, 공연장에서는 관객이 앉아 있으니 어떤 톤을 내야할지가 명확해서 훨씬 재미있어요. 관객이 즐겁게 봐주면 힘이 절로 나거든요.” -공연 중 웃음이 터져서 난감해 보이던데, 괜찮았나요? “오히려 관객이 웃어줘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관객이 웃는 건 그만큼 극에 공감한다는 의미니까요. 반대로 관객이 웃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져서 소심해지곤 해요.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은 개인적으로 너무 즐겁습니다.”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공연장이 암전되는데, 진짜로 키스했나요? “하하.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하죠.” -관객에게 실제 와인과 돈을 나눠주거나, 관객의 무릎 위에 앉기도 합니다. 대본에 있는 장면인가요? “관객의 무릎에 앉는 건 제 아이디어에요. 와인과 돈을 나눠주는 장면은 양정웅 연출과 작품을 준비하면서 탄생했습니다. 돈은 배우와 스태프가 갹출해요. 영국판 ‘미드썸머’에서는 배우들이 관객과 덜 놀더라고요. 우리처럼 공개 콘서트 하는 장면도 영국에선 없죠.” -관객 반응 중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나요? “와인을 관객에게 나눠줄 때 컵이 떨어져서 없다고 하니깐 ‘병나발’을 불면 안 되냐고 말한 한 여자 관객입니다. 진짜로 병나발을 불었고요(웃음). 관객이 노니 배우도 신이 나서 더 몰입하게 돼요. 배우가 와인을 실제로 마시냐고요? 마시는 척만 하죠. 정말로 다 마시면 큰일 나요. 그런데 제가 원샷 하는 마임을 하니깐 관객들이 ‘에~’라고 야유를 하더군요. 푸하하.” -극 중 밧줄로 온몸을 묶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구속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은 신이 나서 일단 체험해보자는 기분이지만, 그것도 잠깐이에요. 밀폐된 공간에 둘만 남은 남녀, 밧줄을 풀어줄 사람이 없다는 위기감, 그러면서 비밀이 새어나오죠. 참 절묘한 설정 아닌가요?” -‘미드썸머’는 상당히 독특한 작품입니다. 특히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점 말이죠. 다르게 보면 딱히 연기라는 생각이 안 들기도 해요. 연기 몰입은 어떤가요? “이런 장르는 처음인데 정말 제게 잘 맞아요. 배우가 해설도 하고 극 중 인물이 되기도 하고 이런 작품은 우리나라에 많지 않아요. 정말로 연기하는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몇 번째 들었는데, 정말 고마운 반응입니다. 대본이 없냐고요? 얼마나 외울 게 많은 데요, 거의 대사예요.”

-가장 크게 공감한 대사는 뭐죠? “글쎄요. 저는 아직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공감을 못합니다. 솔직히 밥과 헬레나가 하는 35세의 고민도 공감을 못하겠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고민하기 전에 하려고 노력해왔거든요.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았죠.” -극 중 노래 ‘다가와’는 정말로 범석 씨가 고등학생 때 만들었나요? “아니에요. 다만 그때 하는 대사(이 곡은 제가 고등학생 때 만든 곡입니다)는 제가 만든 말이죠. ‘다가와’를 부르기 전에 퀸의 ‘아이 원 투 브레이크 프리’를 몇 소절 부르다가 ‘다가와’를 부르는데요, 솔직히 관객은 퀸의 노래를 더 듣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데 아무 대사 없이 하면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할 것 같아서 관객이 이질감을 덜 느끼도록 그런 대사를 만들어봤어요.” -‘미드썸머’는 음악이 있는 연극인 데다 노래를 전문적으로 한 적 없는 예지원 씨와 맞추려면 노래를 너무 잘해도 이상할 것 같아요.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못하는 척이 더 힘들다던데, 어떠세요? “이 작품에 가창력 부분은 없어요. 편안하게 들려야 하죠. 그래서 잘 부르려고 노력하진 않아요. 별로 힘들진 않아요.” -예지원 씨는 정말 특이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까?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죠. 술 취한 연기가 일품이에요. 잘 망가지더라고요. 그런데 전 국민이 아는 4차원 예지원 씨가 저한테 4차원이라고 말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허허.” -이석준 씨가 연기하는 밥은 어떤가요? “저보다 똑똑한 것 같아요. 말투도 똑 부러지고요. 예지원 씨와의 호흡은 저나 석준 씨나 다 잘 맞아요. 우리 모두 ‘짬밥’이 있는 배우니까요.” -‘모차르트!(5월 24일 ~ 7월 3일)’와 ‘미드썸머(6월 12일 폐막)’를 병행하게 됩니다. ‘모차르트!’에서는 모진 아버지였다가 ‘미드썸머’에서는 35살 철딱서니 없는 청년을 연기하는데, 걱정되지 않으세요? “10일 정도 겹치기 때문에 힘들진 않아요. 다만 100% 역할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조금씩은 다른 역할의 느낌이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최대한 먼저 공연장에 가서 그날 하는 공연에 몰입을 더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요.” -‘미드썸머’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무엇입니까? “‘미드썸머’는 소극장에서의 섬세한 연기, 오버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어서 선택한 작품입니다.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 작품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 만족합니다.” 뮤지컬 배우라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늘 불안해” -밥은 우연히 알게 된 실수투성이 이혼전문 변호사 헬레나(예지원 분)에게 거액의 돈을 하루에 다 쓰자고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인 헬레나와 거리 공연을 하고 행인에게 돈과 와인을 나눠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서범석과 예지원은 실제로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행동을 말과 몸짓으로 동시에 보여주거나 진짜 돈(연극에서는 1000원짜리 지폐)을 관객 손에 쥐어주거나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관객에게 나눠주는 등 관객을 웃기고 그들과 호흡한다. 하지만 웃다가도 그 이면에 남은 30대의 고민과 서글픔 탓에 가슴 한 곳이 쿡쿡 찔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올해로 마흔 하나, 30대를 이미 지나온 서범석의 삼십대도 밥처럼 외롭고 서글펐을까?- -30대 때 서범석 씨가 했던 가장 큰 고민은 뭐였어요? “연기에 대한 고민이었죠. 무대 위 존재감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나요.” -뮤지컬 배우로 바쁜데도 앞이 캄캄할 때가 있었나요? “지금도 그런데요? 앞날이 어떻게 될지, 당장 다음 달 나한테 들어올 작품이 있을지, 내가 할 수 있는 작품이 언제까지 있을지 늘 불안하죠. 남들은 (내 위치를) 부러워하지만 저는 어떤 작품이 내 마지막이 될까 노심초사랍니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연극을 하고 있죠. 뮤지컬은 못하더라도 연극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미드썸머’를 선택한 이유에는 이것도 포함돼요. 뮤지컬 배우는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건 익숙하지만 표정이나 말로 표현하는 건 일반 영화나 연극을 하는 사람보다 약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쫓아가 볼라고요. 그 쪽(일반 영화나 연극)은 왠지 길이 많을 것 같아서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어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골프입니다. 얼마 전부터 골프가 좋아졌고, 골프 선수가 되고 싶지만 지금은 이룰 수 없으니까요. 만약에 10대나 20대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골프 선수가 돼서 타이거 우즈와 겨뤄보고 싶어요(웃음).” -자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요?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군요.” -극 중 키워드이기도 한 ‘변화는 가능하다’라는 말에 공감하나요? “그럼요. 저의 가장 큰 변화요? 음…. 뮤지컬과 연기를 그만두는 일 아닐까요? 물론 힘들겠지만.” -밥은 비닐뭉치 돈을 하루에 다 쓰기로 하면서 나중에 후회하기 싫다는 말을 헬레나에게 합니다. 범석 씨는 밥처럼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일 중 지금까지도 후회되고 생각나는 게 있어요? “그런 건 없어요. 긍정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후회는 잘 안 해요. 단지 아직까지 정말 속상하고 변하고 싶은 일은 있습니다. 아이들과 같은 생활리듬으로 사는 일입니다. 제겐 9살 딸과 5살 아들이 있는데요, 공연 때 집에 가면 아이들은 자고 있고, 주말도 저는 공연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있을 시간이 없거든요.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아빠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못 느꼈는데, 요즘은 느껴요. 하지만 저 역시 한참 일할 나이어서 놀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되면 그땐 아이들이 저와 같이 있으려 하지 않겠죠? 그래서 현실이 참 서글퍼요.” -인생을 과거로 돌이킬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태어나서 머리의 모양이 형성되기 직전입니다. 너무 착하게 드러누웠던 탓인지 뒤통수가 없어요.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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