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하고 까칠해 보이는 이미지가 싫어서 큐레이터만은 결코 되지 않겠다던 제가 큐레이터가 된 지 벌써 2년 반이 돼가네요.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서슴없이 솔직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녀는 바로 서울 사간동 아프리카 미술관의 윤보라(30) 큐레이터. 화가가 되고 싶어 5살 때부터 미술을 공부하고, 방학 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오가던 그녀는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서도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홍익대 예술학과에 합격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미술 공부를 이어갔다. 그만큼 미술에의 열정이 강했지만 큐레이터는 되고 싶지 않았다. “저는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미술관과 갤러리는 격식을 갖춰야 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장소로 느껴졌어요. 그런 장소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어려워 보여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도 큐레이터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러던 도중 아는 선배가 아프리카 미술관을 추천해줬다.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갔다. 하지만 아이가 조각 작품을 부러뜨렸는데도 “괜찮다. 그건 부러질 운명이었나 보다”라며 너그럽게 아이를 감싸주는 정해광 아프리카 미술관 관장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아프리카 미술관의 친근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일하기로 마음을 굳혔죠.” 아프리카 미술관이 생긴 지 8개월쯤에 들어갔던 그녀는 본래 큐레이터가 꿈이 아니었기에 힘든 일도 많았다. 작품 설명하는 방법이나 아프리카 미술에 관한 지식이 없어 매일 울기도 했다고. 관두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지난해 ‘정해광, 아프리카 미술을 외치다’ 전시가 열렸을 당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프리카는 모든 게 열악”은 편견 “80세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전시를 보러 오신 적이 있어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니 열심히 들으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할머니께서는 과거에 미술을 공부하고 싶으셨는데, 여러 제약 때문에 안타깝게 포기하셨다가 다시 꿈을 위해 대학에 들어가셨다고 하시더군요. 보석 같이 빛나던 할머니의 눈이 아직도 기억나요.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몸이 힘든 것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프리카 미술품을 다루다 보니 아프리카에 직접 가는 일도 많다. 아프리카 미술은 한국보다 열악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직접 가 본 아프리카에는 훌륭한 작가 뿐 아니라 작가들을 후원하는 곳들도 많았다. 아프리카를 다니는 내내 더운 날씨에 힘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된 정해광 아프리카 미술관 관장과 함께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은 예쁜 아기도 태어나 가족이 오순도순 아프리카 미술관을 꾸려가고 있다. “아기도 키워야 하고, 번역도 해야 하고, 전시를 열기 위해 좋은 작가도 찾아야 하고… 정말 바쁘게 살고 있어요. 아직 공부해야 할 것들도 많고요. 큐레이터로 지내온 지 2년 반이 된 지금 다시 2년 반 뒤에는 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