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가 기하급수적 커졌지만, 불공정거래로 인해 일반 투자자들의 손해는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이유는 소위 ‘스캘퍼’라고 불리는 초단타 매매자들이 주식시장을 교란시켜 왔으며, 증권사들은 이들과 모종의 담합을 맺고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금융당국은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파생상품 거래에 제한을 두는 규제 방안을 발표했지만, 상품 자체가 문제에 있음에도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LW가 뭐길래 '개미'들이 모였나? ELW는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상품이다. 투자위험을 줄이기 위해 금융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보험'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거래자들은 ELW가 주는 보험의 기능보다는 로또와 같은 대박의 투기 상품으로 보고 접근하기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유가증권 시장의 경우 전체 파이가 커지는 ‘윈-윈 게임’이 가능하지만, ELW와 같은 파생상품의 경우 한 사람이 손해를 보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는 구조로 돼 있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승자의 득점은 항상 패자의 실점)’으로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다. 즉, 누군가 대박을 터트리면 누군가는 쪽박을 차야한다.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 전용회선 제공 등 ELW 부정거래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체포됐던 스캘퍼들이 스스로 “ELW는 시장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없애야 한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H증권 등 증권사 출신으로 1초를 쪼개 7번 거래한다는 전문 스캘퍼로 10억원의 투자해 300억원 이상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부정거래 혐의로 조사 받고 있는 당사자 스스로 ELW 상품 자체의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또 300억원의 수익을 거두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돈을 잃은 적이 없다고 진술해 모순된 구조를 이용해 수익을 극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은 한국거래소 국정감사에서 “현 ELW 상품은 투자 상품이 아닌 투기상품으로 변질됐다”며 “당장 수익만을 바라보고 현 시장의 문제점을 거래소가 방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개미잡는 ‘슈퍼 메뚜기’ 탓에 일반 투자자들이 그 손실을 그대로 입고 있는 셈이다. 증권사, ELW 여전히 포기 못해…돈만 벌면 그만 개미잡는 대형 메뚜기 '스캘퍼' 로 금융계가 떠들썩하지만, 증권사는 ELW 상품을 계속 출시하고 있으며, 시장의 위축을 우려해 ELW 상품 투자 설명회를 열고 있다. 5월 한달 동안만 동부증권, IBK투자증권, 크레디트스위스증권, 노무라금융투자, KB증권, 한국스탠다스차타드증권 등 국내-외국계 증권에서 거대 규모의 ELW를 신규상장하며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또한 노무라금융투자 등 몇몇 증권사들은 ELW 포럼 및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들 증권사는 “ELW 투자가 스캘퍼 등의 문제로 검찰 조사로 이뤄지면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오해를 해소하고 건강한 투자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이라 설명한다. 이어 "ELW를 투기가 아닌 투자상품으로 활용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발언의 진정성은 의심스럽다. 금융당국의 뒤늦은 수습…“글쎄”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스캘퍼 문제와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개인이 안게 되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금융당국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는 'ELW 시장 건전화' 개선안을 마련하고 7월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일반투자자의 섣부른 진입을 막고자 ELW 거래시 1500만원의 기본예탁금을 예치해야하고 외가격(행사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 상품의 경우 신규발행이 제한된다. 증권사와 스캘퍼의 불공정거래로 논란이 된 전용회선도 제한된다. 투자자별로 전용회선을 배정하는 것을 허용하되 일반투자자들도 증권사와 개별적인 계약을 통해 전용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본예탁금 도입 등 투자자의 진입절차를 보다 강화함으로써 일반 투자자의 무분별한 투자를 제한할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ELW 상품을 표준화하고 가격의 정보공개 확대를 통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ELW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아져 초보투자자들의 무분별한 피해는 줄어들 전망이지만, 불공정거래를 근본적으로 막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루에 수십억원을 굴리는 스캘퍼들에게 1500만원의 예탁금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1500만원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큰 손인 스캘퍼다”며 “검찰은 시장을 교란한다는 스캘퍼를 잡고 있는데 ELW 시장을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조치로 ELW 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다. 피해를 키우는 상품 왜 없애지 않는가? 파생상품에 대해 일반투자자들의 피해는 기형적인 시장 구조를 통해 예견됐음에도 금융당국이 감독 기능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ELW 발행액은 82조2187억원으로 2009년보다 111% 늘어났다. 금감원은 받은 발행분담금(운영경비의 일부를 부담하는 금액)으로 금감원이 올린 수입은 74억원으로 추정된다. 올해 1분기 ELW 발행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0% 늘어났으며 올해 금감원이 분담금 면목으로 거둬들일 수입은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거래소도 ELW를 통해 거액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거래소는 상장수수료(187억원)와 거래수수료(149억원)로 336억원 가량을 벌어들였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LW 시장의 급성장에도 느슨한 감독 체제를 고수한 원인이 수수료를 때문이 아니겠다는 지적이다. 조문환 의원은 “상품운영과 감독주체인 거래소는 ELW 시장에서 거래소의 전체 상장수수료를 능가하는 안정된 매출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