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 연구소 실장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수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버트런드 러셀은 1931년에 ‘명상이 사라진 시대’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 세계에는 여가라고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옛날보다 열심히 일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락도 일처럼 수고로운 것이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리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지혜란 천천히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방울 한 방울씩 농축되는 것인데 누구도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절대적인 노동시간은 크게 줄었는데, 여가라고는 없다니! 과연 여가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가란 하루 24시간 중에서 노동과 수면, 요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간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의미할 것이다. 이를 수식으로 나타내면 ‘여가 = 24시간 - (노동시간+수면시간+일상생활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면과 일상생활에 소요되는 시간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고 하면, 여가는 곧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줄고 그 반대면 늘어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여가시간을 TV시청과 각종 모임 참석 등으로 보낸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TV를 봐야하고, 소위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저런 모임에 참석한다. 러셀이 말하는 것처럼 여가시간이 일하는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공식적인 노동시간은 그대로라도 비공식적인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여가시간은 줄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면 정작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길어진 수명 탓으로 노후준비 스트레스라는 것이 덧붙어졌다. 각종 생활비에 주택마련 비용, 자녀교육비 등에 노후생활자금 마련까지 빠듯한 수입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높은 기대수익률을 바라보고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주가가 올라갈 때 사고, 내려갈 때 판다.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상품에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투자패턴이 투자의 정석에 위배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제어가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개인이 직접투자든 간접투자든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고령화가 진전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그 결과 금리는 하향 안정화될 것이다. 나아가 각종 사회보장지출 증가와 세수감소로 국가의 부채가 늘어나면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올라갈 수 있다. 이럴 경우 안정적인 자산의 수익률만으로는 물가상승률조차 따라잡기 힘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주식투자는 너무나 합리적 투자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런 합리적 투자행위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장기투자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투자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생활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러셀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혜가 한 방울 한 방울 농축되듯이 투자의 결실도 조금씩 영글어가지 않을까.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고독을 즐겨보자. TV와 스마트폰을 떠나 집 주변이라도 거닐어보자.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널려 있다. 그 소중한 것들과 맘껏 대화를 나눠보자. 그리고 집에 돌아와 느낀 점을 돈으로 환산해 행복가계부라는 것에 기록해보자. 생활의 여유는 많아지고, 덩달아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투자에 대한 인내와 지혜 역시 함께 싹트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