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큐레이터다.” 박옥생(34) 한원미술관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가 처음 꺼낸 한 마디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큐레이터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순탄치 않다. 계약직 큐레이터도 많고, 급여 문제도 있을뿐더러, 오래 버티기 힘들 만큼 고된 일에 허덕일 때도 많다. 자존심이 구겨질 때도 있다. 한국회화사를 전공한 박 큐레이터가 고미술 분야에서 베테랑급으로 일하다가 현대미술 분야에 새롭게 뛰어들었을 때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인사동에서 일할 때는 현대미술 분야 경력이 많은 큐레이터에게 책상을 하루 만에 빼앗긴 적도 있었다. 강제 해고도 여러 번 당해 눈물을 쏟으며 가방을 싼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희망과 열정, 뜻을 품고 미술 분야에 새롭게 뛰어든 사람들의 기회를 바로 빼앗아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얼마나 아까운 일이에요. 미술 분야에서는 신인도 경력 많은 큐레이터도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인 큐레이터들이 설 기회를 제공해줘야지, 그 자리를 시작도 하기 전에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부당한 해고에 피눈물도 쏟았지만 “그래, 나는 이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노력했고, 어느덧 경력 10년의 큐레이터가 됐다. 최근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가방을 싸던 그 옥생이 지금의 이 옥생과 동일인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10년의 경력을 쌓으면서 함께 쌓아온 것이 있다. 바로 ‘글’이다. 그녀는 글을 참 많이 쓰는 큐레이터다. 미술 평론도 많이 썼다. 처음에 평론을 쓰기 위해 공부할 때는 너무 어려운 글들이 많아 놀랐다고 한다. “서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어려운 글들이 많더라고요. 일반 대중들은 물론 작품을 만든 작가까지 평론을 이해 못할 때가 많아요. 저는 ‘작품’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대중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도 하고, 제 삶 또한 바탕으로 하면서 느끼고 보이는 대로 글을 쓰고 있어요.” 작품과 글이 서로 상호보완 작용을 해야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그녀는 작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평이 유명한 비평가의 아우라를 빌리는 용도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보다 빛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 “글을 쓰는 사람도 작가와 작품을 많이 연구해야죠. 이것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여러 평론가들에게 글을 받기보다는 한 평론가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작품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보여주면서 서로 이해관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앞으로 많은 작가들을 만나고 공부하면서 글을 열심히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