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6월 21일 오후 3시(이하 현지시간)에 개최된 유엔 총회에서 넬슨 메소네 안보리 의장이 반 총장의 연임 추천 결의안을 제안한 뒤 조지프 데이스 유엔총회 의장이 재선 안건을 공식 상정하자 192개 전 회원국 대표들이 박수를 치면서 만장일치로 연임을 확정지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반 총장의 경쟁자도 없었고, 표결도 없었다. 그야말로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사상 첫 한국인 유엔 수장이 ‘동양적 리더십’을 인정받아 국제사회의 전폭적 지지로 5년 연임이 확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46년 유엔 창설 후 8번째 사무총장인 반 총장의 첫 5년 임기는 올해 12월 말로 끝나며, 2기 반기문 체제는 내년 1월 1일 출범해 2016년 말에 종료된다. 반 총장은 연임이 확정된 뒤 회원국 대표들의 기립박수 속에 회의장에 입장했고, 전체 회원국을 대표하는 5개 지역그룹 대표들의 지지와 찬사 연설을 들은 뒤 유엔 헌장에 손을 얹고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선서했다. 성실함과 능력으로 국제사회 전폭적 지지 얻어 이어 반 총장은 수락연설에서 “나에게 보내준 신뢰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서 “유엔 회원국과 다양한 국제 파트너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다리 건설자’(bridge builder) 역할을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와 결의를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반 총장은 “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도전의 시기에 직면해 있지만, 함께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통합과 상호 연결의 시대, 혼자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유엔의 역할은 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반 총장은 “9월 유엔 총회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며 “가장 우선하는 어젠다는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한 지속개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 총장은 “이제까지 세계는 물 부족, 에너지 부족, 식량 위기, 보건 문제를 따로따로 여러 포럼을 통해 처리해 왔는데 이런 현안들은 모두 연관이 돼 있다”며 “이런 연관된 문제를 좀 더 광범위하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 포괄적인 비전 제시를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사실 반 총장은 2007년 1월 취임 초 서방 언론으로부터 ‘카리스마 부족’이라는 지적과 함께 중국 등의 인권 문제에 침묵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지만 특유의 ‘조용한 외교’, ‘해결책을 찾는 외교’를 통해 이를 극복해 왔다. 특히 반 총장은 올해 코트디부아르 내전 해결에 큰 기여를 했고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북아프리카 사태 때 적극적으로 시위대 편에 서서 국제 사회 여론을 선도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였으며, 기후변화를 지구촌 최대 이슈로 부각시켰고, 여성·아동 인권 향상에 큰 기여를 하는 등 ‘반기문 체제 1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듯 반 총장은 재선 여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집권 1기와는 달리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집권 2기에 접어든 만큼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기여 등 한반도 현안에 대해 적극적 역할을 모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위기의 진앙 지역인 북한 핵문제에 대해 유엔 수장으로서 모종의 역할을 하려는 개인적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북핵 ‘중재외교’ 모색…평양방문 추진 가능성 장기 교착된 경색국면을 풀고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대화와 협상 프로세스를 되살려내기 위해 적극적 ‘중재외교’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반 총장으로서는 중동사태와 이란 핵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이기는 하지만 동북아의 긴장과 불안을 야기하는 북핵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다는 상황인식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 6월 6일 사무총장 연임 출사표를 던지며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화해 도모에 그 누구보다 깊은 관심으로 노력해 왔다”면서 “앞으로 더 자신감을 갖고 한국 정부 및 관련국들과 협의하면서 나름대로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반 총장은 6월 21일 연임 확정직후 가진 뉴욕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에 대한 기대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심적 부담감이 있다”면서 “한국은 국제사회가 기대하고 그 위치에 상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은 한반도 평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내 입장은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유엔은 문제 해결의 메커니즘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반 총장은 “북한 당국은 나의 방문에 대해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라며 “나 나름대로 적절한 시기와 현안 해결에 대한 기대를 봐가며 결정할 것”이라면서 여건이 충족되면 방북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따라서 한국인 출신으로 ‘지구촌 대통령’을 연임한 반 총장으로서는 조국의 평화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중차대한 과제로 북핵 문제를 상정하고 연임 기간 내에 북핵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다각도의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 총장의 이같은 의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환경도 역할론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12년이면 한·미·중·러 모두 권력교체기에 접어들고, 이는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북핵 협상판도에 ‘새판짜기’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반 총장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 한 외교소식통은 6월 22일 “반 총장은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6자회담 프로세스를 조속히 되살리도록 역할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이벤트로는 반 총장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다. 집권 1기에도 반 총장의 방북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일련의 도발행위가 이어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군사적으로 긴장되고 외교적 대치가 첨예화되는 상황이 지속돼 온 탓에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반 총장은 직접 평양 방문을 추진하기보다는 지난해 2월 린 파스코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을 특사로 평양에 보내는 선에 그쳤으나 집권 2기에 들어선 반 총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한반도 정세의 전반적 흐름이 대화재개 국면에 진입해 있는데다 2012년을 거치며 6자회담 관련국들의 권력변동이 마무리될 경우 방북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으로서도 반 총장의 방북이 갖는 ‘활용가치’를 최대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유엔 수장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립국면에 놓인 북한으로서는 이를 대내외적 선전에 적극 이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반 총장의 ‘방북조건’과 ‘타이밍’은 한반도 주변정세의 흐름과 맞물려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리 정부를 비롯해 6자회담 관련국의 ‘의사’가 중요한 참고요인이라는 점에서 관련국들과의 조율 향배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반 총장이 연임 기간에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업적’을 남기느냐는 퇴임 후의 행보와도 직결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다. “한국 외교사에 큰 획…후배들에게도 귀감” 반 총장은 퇴임 이후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남과 북을 아울러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민족적 지도자로서의 역할모델을 상정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인물로서 퇴임 이후에도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을 대표하기보다는 민족의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면서 “그런 맥락에서 연임 기간에 한반도 문제에 적극 관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망은 반 총장의 ‘한반도 역할론’이 북한 핵문제에 그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정착 등으로 외연이 크게 넓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축하했다. 이 대통령은 6월 22일 오전 10시부터 7분간 진행된 통화에서 “지난 임기 동안 보여준 반 총장의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세계 모든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고 전폭 지지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선진국 정상들은 물론이고 특히 개발도상국 정상들이 반 총장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시해 줘서 매우 자랑스러웠다”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이 대통령과 국민 모두의 성원과 격려에 감사하다. 회원국 모두가 만장일치로 지지해줬다”며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지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에 감격스럽다”고 화답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회원국 정상들에게 친서를 보내 반 총장의 연임을 지지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친서에서 “(반 총장의 연임은) 지난 4년 반 동안 국제 평화, 안보, 개발,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사회가 당면한 여러 도전에 열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온 반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국제 사회가 평가한 것”이라며 “반 총장의 출신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반 총장의 재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귀국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사례했다. 이어 “한국도 유엔 회원국으로서 앞으로 유엔의 이상과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데 귀국과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반 총장의 연임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현역 외교 관료와 원로 그룹은 “반 총장이 연임을 통해 한국 외교사에 또 한 번 큰 획을 그었다”며 한 목소리로 환영과 지지의 뜻을 밝히는 등 국내 외교가는 ‘잔칫집’ 분위기였다. 김용규 외교협회 회장은 “반 총장의 재선은 지난 4년 반의 활동을 통해 유엔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 “한국이 낳은 외교관이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후배 외교관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김 회장은 “반 총장이 앞으로 5년 동안 인권 보호와 세계 평화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 큰 업적을 남길 것이라고 본다”면서 “유엔 개혁과 기후변화 문제 등에서도 확실한 해법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 총장을 사무관 시절부터 지켜봐 온 외교가의 ‘대선배들’ 역시 반 총장의 성실함과 인품, 능력 등을 높이 평가하며 재선에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유엔대사를 지낸 박수길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 회장은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에서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라면서 “반 총장의 연임은 그의 ‘조용한 리더십’이 평가받은 결과이며 한국의 자랑”이라고 기뻐했다. 특히 박 회장은 “반 총장은 한국인이자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한반도 통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비핵화에도 역점을 두고 의미 있는 해법을 도출해낼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다. 후배 외교관들도 반 총장의 연임 소식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 반 총장이 외교부 장관이던 시절 대변인직을 수행하며 ‘동고동락’했던 신봉길 한·중·일 협력사무국 초대 사무총장은 “반 총장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과 인내심의 소유자”라면서 “반 총장의 재선은 세계가 그런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신 총장은 “요즘처럼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시대에 만장일치로 유엔 사무총장에 재선됐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라면서 “‘화합의 지도자’인 반 총장께서 세상의 격차와 갈등을 줄이는 일에 매진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북한매체, 반 총장 연임에 침묵하는 까닭 반면 북한 매체는 한민족의 경사인 반 총장의 연임 소식을 일절 전하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평양방송, 중앙방송 등 북한의 대내외 매체들은 반 총장의 연임이 확정된 이후에도 일절 관련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이러한 침묵은 신석호 유엔주재 북한 대표를 통해 반 총장 연임 지지의사를 밝히고 그동안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강조해온 일련의 행보와 대조적이다. 북한은 틈나는 대로 남북한이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며 ‘민족의 공동번영’을 주창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 대사는 6월 6일 반 총장이 재선도전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 유엔본부에서 열린 반 총장과 유엔 내 아시아그룹 회원국 대사 53명과의 조찬 회동에서 “우리는 총장님의 재선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유엔 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된 후 신 대사를 비롯한 북한 관계자들은 반 총장의 연설이 끝나자 박수를 보내 환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에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하는 등 결코 자국에 불리하지 않은 행보를 보인 반 총장의 연임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었으나 반 총장이 남한 출신의 국제적 인사여서 아무래도 연임 소식을 보도하기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 총장의 연임을 보도할 경우 남한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셈이어서 식량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국의 처지와 비교돼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을 절대시하는 북한이 ‘세계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리우는 반 총장의 존재를 알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2006년 10월 반 총장이 사무총장직에 처음 당선됐을 때도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같은 민족으로서 반 총장의 연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국제기구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반 총장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며 “조만간 관련기사를 짧게라도 처리할 공산이 크다”고 말함으로써 북한이 앞으로 반 총장의 연임 기사를 보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