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역으로 몰입한다거나,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그림그리기와 책읽기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의식의 획득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비슷하죠.” 이랜드문화재단은 책과 예술가의 매력적인 만남을 테마로 기획한 ‘Artists & Books 전’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책이라는 공통된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 4명의 다채로운 작품 10여점을 선보인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4인 4색 작가의 '책' 작업을 통해 매력적인 현대미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김근배는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인물을 등장시켜 유쾌하고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낸 대리석-브론즈 조각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품의 80%가 책에 관련된 것 인만큼 책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고 말한다. 이를 무겁고 심오한 철학적 정신세계가 아니라, 가볍고 유쾌한 상상력의 세계를 작품의 주된 테마로 풀어낸다. 작가의 내면세계를 입체화시켜 책으로 형상화하며, 대리석과 브론즈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결합해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시킨다.
박선영은 일상생활에서 봐왔던 다양한 사물을 단순화시켜 조각한다. 그의 대리석은 거친 노동의 흔적과 차갑고 모난 돌의 물성을 벗어나, 따뜻하며 아기자기한 느낌을 담는다. 곱게 다듬어진 돌의 표면에 날카로운 끌을 이용해 다양한 이야기를 드로잉으로 새겨넣는다. ‘마법의 주전자’가 꽃을 피워내는가 하면, 대리석 쿠션이 꿈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회화적 드로잉을 조각에 담는 박선영의 작품은 달콤한 동심과 유쾌한 상상력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서유라는 화폭 위에 책의 이미지를 그린다. 책꽃이에 놓인 책이 아닌, 바닥에 쌓아올리거나 세워놓은 책을 내려다보는 식의 화면을 연출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고 유희적인 상상력을 표현한다. 박물관-도서관의 깊은 곳에 꽂혀 있을법한 낡은 고서에서부터 근래에 출판된 다양한 주제의 서적, 잡지 등을 화면 속에 구성한다. 서유라만의 독창적인 ‘책 쌓기’ 방식의 그림을 통해 작가 개인이 처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지 엿볼 수 있다. 임수식은 조선 민화의 한 형식인 ‘책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사진으로 표현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책장과 서재를 촬영한 것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전통사진방식에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기존의 사진인화지 대신 한지에 사진을 출력하고, 이를 전통 조각보를 만드는 것처럼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이어나가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고의 작업방식은 한지가 지닌 자연스러운 물성과 어우러져, 책 속에서 접했던 아련한 옛 기억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