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설 미술관 중에서 최대 규모임은 물론 국립 미술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는 삼성 리움미술관의 홍라희 관장(66)이 3년 만에 컴백한 후 지난 6월24일로 100일이 넘었다. 지난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특검 때 검찰에 소환되면서 2선으로 물러났던 홍 관장의 컴백에 대해 일부에서는 “침체된 미술 시장이 되살아나게 됐다”며 반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바로 잡혀가던 국내 미술 거래 풍토가 또 왜곡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홍 관장의 복귀 넉 달째를 맞아 그의 공과를 점검해 본다. 해외 미술품만 구입 국내 미술계에서 최고의 영향력 있는 개인이랄 수 있는 홍라희 관장에 대해 다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지난 6월7일 서미갤러리 홍송원(58) 대표가 “밀린 그림 값 531억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였다. 앞으로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겠지만 서미갤러리 측의 소장을 대충만 훑어보더라도 홍라희 관장의 특징 중 상당 부분이 드러난다. 우선 엄청난 액수의 미술품 거래를 한다는 사실이다. 서미 측은 “2009년 8월~2010년 2월, 다섯 달 사이에 납품한 그림 값이 781억 8000만원 어치”라고 했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불과 다섯 달 사이에 800억 원 어치나 되는 그림을 사들인 셈이 된다. “미술계의 최대 큰손”이라고 홍 관장이 지칭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거래되는 그림의 종류와 단가다. 서미가 이 기간 중 납품했다고 주장하는 그림들은 하나 같이 서양 유명 화가의 작품이었고, 작품 단가도 최저 3억 7천만 원(댄 플라빈 작 ‘무제’)부터 최고 216억 6천만 원(프랜시스 베이컨 작 ‘Man Carrying a Child’)까지 고가였다. 국내 화가 작품 중 최고 경매가 기록이 45억 2천만 원(박수근의 ‘빨래터’)이고, 나머지는 대개 거래 값이 수백~수천만 원 사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내에선 볼 수 없는 고가의 외국 그림만 사들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백억 원 씩이나 하는 외국 명화를 삼성 돈을 들여 사들이니 한국에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삼성 리움미술관의 설립 목적 중에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집한다’는 것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외화를 뭉텅이로 쓰며 리움 미술관이 사들인 해외 유명작가의 값비싼 작품들이 리움미술관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소장 작품은 어느 정도나 되며, 연간 관람객은 얼마나 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리움미술관 측은 “밝힐 수 없다”,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초고가 작품의 소장처나 보유 개수까지야 밝힐 의무가 없다고 해도 ‘국민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작품을 사들인다’고 설립 목적을 밝혔고, 이런 목적을 자체 웹사이트에도 버젓이 밝혀 놓은 미술관이 왜 연간 입장 관람객 숫자까지 안 밝히며, “왜 그런 걸 우리가 공개해야 하느냐”며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는 데까지 이르러서야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고 리움미술관장을 맡기 전에 이미 국내외적으로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였던 홍 관장이 자신의 독자적인 심미안과 판단기준에 따라 해외의 유명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사들인다고 볼 수도 있다. 삼성 리움미술관 정도의 규모가 되면 그 일거수일투족이 국내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리움미술관의 이러한 ‘해외 유명작 선호’는 이미 국내 미술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리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재벌계 미술관들이 해외 유명 작품만 선호하는 탓에 현재 한국에서는 해외 작품은 현지 시세와는 상관없이 높은 값에 거래되는 일이 흔하며, 그 반작용으로 국내 화가들의 작품은 천대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리움처럼 흐름을 좌우할 힘을 가진 초거대 콜렉터가 “외국 작품 아니면 안 돼”라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면서 국내 화가들의 작품, 특히 동양화는 최근 들어 작품 거래 값이 하락하는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유명 화가의 작품은 갖고 있으면 값이 오른다”는 미술품 수집의 기본원칙이 한국에선 리움 등 일부 재벌계 미술관의 해외 작품 편애 탓에 완전히 깨지고 있는 현상이다. 리움이 정말 외국 작품만 편애하는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사 주는지는 리움 측이 구입-소장 작품 명단을 공개하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리움 측은 소장 작품을 공개하지 않고 언론의 요청에 대해서는 “왜 알려고 하느냐?”고 되묻는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미술품 시장의 지하화 삼성미술관 리움은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에 이어 이건희 회장이 ‘한국 미술사를 기록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을 수집 또는 보강하고, 한국 근-현대 작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일에 노력하는 삼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2004년 10월13일 개관했다. 이듬 해 2005년 3월1일 정식 운영에 들어간 리움에는 세계적인 컬렉터로 이름이 알려진 홍 관장이 취임한다. 개관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13회에 걸친 리움의 전시 형태는 한국작가와 해외작가의 전시 횟수로는 대등하게 구성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작품의 전시는 백남준, 이중섭 외에는 그룹전 형식이었으며 해외작가들은 개인전 형태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유는 서미갤러리 측이 주장하고 있는 홍관장의 구입 작품 목록들이 해외 고가미술품 일색이고 지난 2008년 삼성특검 당시에 등장한 미술품 역시 해외 유명작품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미술품들이 아직은 구매하기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미술품이 저평가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우선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 부재가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선물로 주고받았던 관행도 한몫 한 것이다. 동양적 사고가 남아 있는 아시아권에서 이를 극복한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수년전 자국의 현대미술품의 가격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해서 정부와 기업이 앞장서서 해외 유명작가들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현재도 이러한 추세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삼성미술관 리움의 행보는 한국 미술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이다. 한국미술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해서는 정부의 힘도 필요하지만, 대기업 미술관이 우선적으로 자국의 작품을 구매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해외 컬렉터도 우리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거래를 하기 때문인 것이다. 기업과 미술관의 은밀한 유혹 미술품을 통한 비자금 조성 창구 오명 벗어야 지난 2007년 10월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변호팀장을 역임한 김용철 변호사의 의혹 제기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삼성 비자금설의 가장 주요한 사안은 고가미술품 구입을 통한 거액의 뭉칫돈이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 등이 회사 비자금으로 고가의 해외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당시 금융정보분석원(FIA)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게 되었다. 당시 김 변호사는 “홍 관장과 이명희 신세계 그룹회장,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 부인 신 모 씨, 이재용 씨의 장모인 임채욱 대상그룹 회장 부인 등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과 신세계 등 관련 회사의 비자금으로 수백억 원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홍 관장은 수시로 삼성구조조정본부 재무팀 관재파트에 연락해 미술품 구입대금을 미술품 거래상인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에게 지급하도록 했고, 홍 관장은 미국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소 등에서 유명화가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이명희 회장 등도 홍 관장을 통해 미술품을 구입했는데, 당시 이들의 미술품 구입대금으로 송금된 돈은 무려 600억여 원에 이른다는 것이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당시 세간의 이목은 삼성 비자금 조성설로 집중이 되었고 결국 ‘삼성특검’을 통해 이건희 삼성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홍 관장의 복귀, 과연 미술계에서는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삼성특검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올해 3월 조용히 미술관으로 복귀하였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홍 관장이 다시금 미술계 전면에 나서게 된다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더욱 커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국내 작가의 작품은 해외 유명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고가의 해외 미술품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도 한 몫 미술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미술 시장이 그 동안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탓에 홍 관장의 복귀는 미술계의 숙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실무자들은 홍 관장이 미술계의 큰 손으로 침체된 미술 시장에 어느 정도 활력소로 작용하겠지만 그간의 삼성의 미술품 구매 관행으로 볼 때 주로 해외 미술품 구매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미술품 거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홍 관장의 공백으로 오히려 한국 미술 시장이 자생력을 갖추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복귀는 어느 측면에서 이를 지연시키고 다시금 ‘고마우신 한 분’을 위한 지하 시장으로 되돌아가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한 화랑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술시장의 침체는 미술계 큰손으로 불리던 홍 관장이 자리를 비우게 돼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때문이라며 그녀의 복귀만으로는 미술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홍 관장은 미술품과 화랑이 비자금 조성, 탈세, 자금세탁, 무자료 거래, 상속 및 증여 수단 등 각종 경제 비리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 미술계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홍 관장이 사임한 배경에는 그가 미술품을 사들이는 데 쓴 자금의 출처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특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대한 쟁점이었다. 2008년 10월 특검은 ‘행복한 눈물’의 실제 소유주가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라고 밝혔다. 홍 대표는 이 그림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구매한 사람이다. 그의 최대 고객은 리움미술관의 홍 관장이라는 것은 미술계에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왔다. 2011년 이 회장은 삼성 경영에 복귀했고, 결국 부인 홍라희 씨까지 리움미술관 관장에 복귀했다. 결국 삼성이 지난 2008년 4월 국민에게 약속한 내용은 전부 뒤집어진 셈이다. 삼성 비자금 조성설과 홍 관장의 작품 구매 거래에서 볼 수 있듯 미술품이 각종 경제 범죄의 수단으로 쓰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술품은 소유자 확인과 유통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운 동산이다. 더욱이 가격 평가를 위한 적정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물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도 수차례 미술품 양도세와 관련한 입법을 추진하였으나, 국내 미술품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반발하는 화랑들에 의해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또한,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으로 자금을 관리할 때 명의를 차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미술품의 경우 번거로운 절차 없이 진행이 가능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의 미술관 리움, 미술계에서도 대표 역할을 해야 할 때 한국 미술의 글로벌 위상 제고를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다해야 리움은 전적으로 개인 기업의 소유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이나 소장품에 대한 내역은 철저히 사적인 부분이기에 쉽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도 “미술관의 소장품 수량과 작품목록 그리고 연간 입장객의 수치 등 기본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전시를 통해서 공개되는 작품들로 소장품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리움미술관이 너무나 수동적이며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개인 소유의 미술관이지만, 삼성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 탓에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 년간 국내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꼽히고 있는 홍 관장은 근-현대 미술과 기업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박물관도 운영하여 한국 미술계에서는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점은 상당 부문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수십,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외국 작품을 주로 구입하는 개인적 취향과 미술관이 지향하고 있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상반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투명하고 공익적인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폐쇄적인 운영에 대해 개인의 사생활과 기업의 사적인 활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리움미술관이 차지하는 국내 미술계에서의 위상이 그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된 상태이다. 이제는 여느 기업체 미술관의 모범이 되는 운영과 한국미술에 대한 지속적이며 획기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투명하고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삼성미술관 리움이 탄생한 의미에 부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리움미술관 홍라희 관장은 1945년 출생한 홍라희 관장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7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 학사 졸업을 하였다. 자유당 정권 시절 법무부-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딸이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의 친누나로, 미술인이기보다는 재벌가 안주인으로 더 잘 알려져 왔다. 그러던 홍 관장은 19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를 맡으면서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1993년 삼성문화재단 이사를 맡으면서 미술계 전면에 등장한다. 이후 1995년 호암미술관 관장에 취임했다. 미술관장 취임은 홍 관장이 삼성가에서 처음으로 맡은 중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