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800조원에 달하고 개인 부문 금융부채는 1000조원에 가까워지면서 서민경제가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서민들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규모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기업대출 마저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대부금융협회의 조사 결과 국내 대학생 500여명이 800억원 가량을 대부업체에 빚을 진 것으로 나타나 금융당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은 440조9000억원, 은행을 포함한 전체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612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경기상황과 자금수요 등에 따라 증감하지만, 대체로 매월 3조5000억원 안팎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가계대출은 추세적인 증가율을 한참 벗어나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실물경제의 성장률을 넘는 가계대출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은도 “가계부채 수준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욱 확대된다면 금융시스템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도한 부채로 서민경제가 크게 흔들리자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중 고정금리-비거치식-분할상환 대출의 활성화 등 대출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2016년까지 현재 5%수준인 고정금리-비거치식-분할상환 대출 비중을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0%까지 높이기로 했으며 은행은 3년 주기로 자체 정상화 연차 목표를 설정하고, 당국은 이를 점검할 방침이다. 또한 고정금리-비거치식-분할상환 대출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확대하면서 기타 대출은 축소키로 했다. 아울러 기존에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위험도와 무관하게 은행별 위험가중치를 일률적으로 적용해왔지만, 앞으로는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위험가중치를 상향 적용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고정금리 비중 늘려라” vs 은행권 “아직은…” 이와 더불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대출도 소득증빙자료를 필수적으로 확인하도록 했고, 고위험 주택담보대출과 특정 부문에 편중된 대출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위험 가중치를 높이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위해 은행들에게 고정금리의 비중을 늘리도록 주문했다. 고정금리 대출비중은 현 5%대로, 당국은 이를 30%까지 늘리라고 주문한 것. 그러나 정작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의 고정금리대출 비중은 11.7%였다. 전달보다 0.3%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변동금리대출이 차지하고 있는 88.3%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잔액기준으로도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7.3%로 여전히 변동금리 대출 비중(92.7%)이 절대적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장기 고정금리 대출 상품의 출시에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변동금리 대출상품이 금리의 폭도 낮고 중도상환과 재차입이 쉽다”며 “이에 고정금리로 갈아타려는 소비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소비자 스스로 고정금리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대책이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새로 출시된 고정금리 상품들에 비해 낮은 변동금리 상품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 이에 은행들은 고정금리 상품 출시에 대해 “상황을 지켜보고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잠정 중단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에 비해 가계대출의 증가규모가 크게 축소되긴 했지만 오름세는 여전하고 아울러 기업대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의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2조3000억원이 증가했다. 이는 지난 2월부터 6개월 연속 늘어난 수치다. 은행의 기업대출(원화 기준)도 지난 달에 비해 5조9000억원이나 늘어나면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렇듯 대출 규모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일부 시중은행들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농협은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론, 주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을 이달 말까지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농협 관계자는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 후 대출 증가세를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객 불편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특단의 대책을 취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이달 말까지 금리안전모기지론(기본형)과 비거치식 분할상환방식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론, 신용대출 등 대부분의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한다.
특히 모기지론과 주택담보대출은 다음 달부터 대출을 재개하지만, 신용대출은 본점의 재개 방침이 정해지기 전까지 전면 중단을 지속하기로 했다. 다만 희망홀씨대출, 전세자금대출 등 서민대출은 계속 취급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가계대출에 대한 본부 심사기준을 강화해 생활자금용 주택담보대출, 주식담보대출 등의 신규 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또 객관적인 상환능력이나 자금용도 등이 증빙되지 않는 신용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심사도 강화해 이 부문의 대출도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주택 구입이나 전세 등 구체적인 자금용도가 없는 단순 생활안정자금 등의 대출은 심사를 강화해 규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전세자금대출 등 실수요자가 꼭 필요한 자금만 대출해주고 급격한 가계대출 증가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고강도 대책은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압박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별 은행 입장에서는 싼 예금금리에 마진을 붙여 대출하면 남는 장사니까 가계대출 늘리는 게 맞겠지만, 우리는 전체 거시경제를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으로 인해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서민들의 불편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무작위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잠정중단은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계부채 느는데다 고물가까지 겹쳐 통계청의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2분기 전국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상승했다. 식료품과 유가 상승으로 교통비 가격이 올라 전반적으로 소비자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미국-유럽발 금융위기라는 악재까지 덮치면서 국내 경제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불안이 장기화되면 국내 실물경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환율이 급등하면 4%대로 고공행진 중인 물가불안이 가속화된다는 것. 정부가 물가와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한국은행은 금리인상이 대외 불안감과 합쳐져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 금리동결을 결정했다. 이에 한은의 금리를 통한 물가잡기는 ‘물 건너 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오름세와 더불어 고공행진 중인 물가까지 서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현실적이지 않고 실제 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심각한 가계부채에 절망하고 있는 서민들과는 달리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비율이 선진국보다 높은 것은 가처분 소득 대비 보유자산의 비중이 너무 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며 “소득과 자산 보유의 괴리에 따른 현상이며 다른 나라와 동등한 잣대로 비교하기에는 과장되지 않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과거에 비하면 어디까지가 소위 위험 수준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경험적으로 보면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걸 막지 못하진 않았고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기가 됐다”며 “가계부채가 심각하지만 ‘진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현재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정부의 대책 강도 역시 우리 경제가 감내하고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들이 밝힌 바와 같이 우리경제의 ‘진짜 위기’ 단계가 오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어떠한 실질적인 대책과 노력을 기울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문답 - 올해 물가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로서는 지난달 발표한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4.0%를 수정할 의향이 없고 그럴 단계도 아니다. 물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원유인데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 가계대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제 이자율이 마이너스라 빚이 더 많이 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실질이자율이 낮아 돈을 빌리는 측면은 있겠으나 이자율이 낮다는 이유로만 돈을 빌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관리대책이 발표됐고 중앙은행도 이런 시각에서 부채 문제를 적절히 보고 있다.” - 금리동결의 배경은? “금융시장에서는 우리 시장의 매우 높은 해외개방도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 민감하게 변동하면서 변동폭이 확대됐다. 주택담보대출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고 해외여건 등 국내외 변화 추이를 좀더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