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담긴 풍경에 먹의 깊은 농담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 깊이를 느끼려고 다가가는 순간 평면이 아닌 자연 속의 살아있는 듯한 입체그림이 선명하게 보였다. 입체회화 작가 손봉채(44)의 작품을 직접 본 첫 느낌이다. 3차원 입체와 평면이 결합된 그의 작품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더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아크릴 같은 겹겹의 투명 화면에 유화로 그려진 풍경과 나무 등이 겹겹이 쌓여 동양화로 보이다가도 LED 조명이 켜지면 신비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그 스스로 명명하여 탄생된 입체회화는 2009년 중학교 미술책에 새로운 회화 기법으로 수록이 될 정도로 그 진가를 확인해 주고 있다. 그는 캔버스가 아닌 유리 재질의 폴리카보네이트라는 특별한 그림판을 사용하는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는 조각 작품으로 이미 미술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회화라는 평면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작업의 유한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재료를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해 “키네틱(움직이는 예술.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에 의하여 움직임을 나타내는 작품의 총칭) 조각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빚도 지고 포장마차도 하면서 힘든 시절을 겪었어요. 그래서 돈이 적게 드는 회화 작업으로 전향했다”며 웃는다. 그간의 고생이 담긴 이야기다. 그렇지만 누구나 하는 회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가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회화가 무엇인지 고민을 하다가 발견한 것이 OHP 필름이었다고 했다. “2000년도 당시였어요, 시험 감독을 하다가 학생들이 OHP 필름에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부정행위하는 것을 압수한 후 수 십장을 겹쳐 보니, 이미지가 입체로 보이는 것을 본 이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고 컴퓨터로 여러 장의 레이어로 하나의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필름이 빛에 의해 누렇게 바래는 것을 보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재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유리에도 그려보고 아크릴에도 작업을 해봤다고 했다. 어느 것 하나 시간에 대한 담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비행기 유리로 쓰이는 방탄유리 재질인 폴리카보네이트를 발견하게 되면서 현재 작업에 사용하는 그림판에 대한 이야기를 술회했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는 과거로부터의 진리를 스스로 깨치고 나서, 스스로 자신이 담아낸 이야기가 영원히 후대에 이어지길 바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 현재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업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담긴 우리 역사의 질곡과 희망의 메시지 그가 주로 담아낸 풍경은 자연을 직접 보고 있는 것 같아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이미지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 풍경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시간으로 덮인 우리 역사의 아픔을 담아서 치유를 위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만들어낸 이미지에 담긴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아버지와 함께 전남 곡성의 한 계곡에 간 적이 있어요, 골짜기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를 섬뜩하게 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 그 계곡물은 피로 물든 애환의 장소였다. 그 곳은 경찰 가족 120여명이 인민군 6명에게 사살된 여순 사건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 이후 2003년부터 역사적 상처를 가진 현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모습으로 비치는 풍경들에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연들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물리적으로는 몇 개의 화면에 불과하지만 개념적으로 시공간을 분할하는 것으로 수십 수백 겹이 될 수도 있고, 수백 수만 시간을 넘나드는 공간으로 볼 수도 있다. 나는 진정으로 나를 잘 살피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이 작업 이전에는 “과거 역사 속 사건 사고 현장에 대한 풍경을 많이 담았어요, 그런데 그 내면의 아픔을 토로하면 그 이야기가 너무 애잔해서인지 구입을 꺼려 했다”며 “지금은 일상의 소시민들이 소원을 빌며 함께 살아온 정자나무 시리즈를 그려요, 물론 그 나무에 담긴 이야기도 다양하지만 아픔보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많은 것 같다며, 이후 작품에 대한 문의도 많아졌다.”며 세상과의 소통에 대한 속내를 풀어내었다. 시간 속 삶,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아내다 입체 그림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손봉채 작가는 “비슷한 풍경을 겹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이나 풍경을 공간 분할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다섯 개의 면으로 분할되는 거지만 개념적으로는 시공간을 분할하는 것으로 수십 수백 겹이 될 수도 있고 수백 수만 시간을 넘나드는 공간인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눈에 비치는 단순한 풍경이나 장면이 아니라 그 너머에 스며있는 시간과 역사를 함께 만나보자는 거다. 현상이 아니라 내면 혹은 본질과 맞닥뜨리자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현상과 본질이 일체가 되는 지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해보고자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면으로 상징되는 공간이 지닌 물리적 개념적 간극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바로 관객과 작가가 함께 가는 길이다. 사실 우리가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고즈넉하다, 스산하다, 따듯하다고 단순하게 스치는 풍경들에도 사실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누대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본질은 그 희로애락에 있는 셈인데도 속도전에 내몰린 현대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스치는 현상을 실체로 착각하고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외부와 진실한 내면의 소통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일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나는 진정한 나를 잘 살피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오는 9월23일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현재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작업을 사비나미술관에서 선을 보이는 자리를 마련한다. 거울처럼 보이는 작품 앞에 다가서는 순간 그 안에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면서 외형에 대한 본질 자체를 완전히 덮어 버리는 작업을 하고 그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고 한다. 입체회화 작가 손봉채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순수미술학부 졸업 후 서울, 광주, 중국, 독일 등에서 개인전 11회를 전개하였다. 1997년 광주비엔날레, 1998년 올해의 작가 8인전, 1999년 도시와 영상전, 2006년 광주비엔날레, 2007년 아르코 아트페어, 스미소니언박물관, 예술의 전당, KIAF, 2010년 광주 광엑스포, 디지페스타 등의 국내외 아트페어와 기획전을 통해 작업활동을 전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