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뜻밖의 조커로 떠올랐다. 지난달 24일, GM과 LG가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양사가 “미래 전기자동차의 디자인과 개발에 공동 참여하기로 했다”며 협업의 뜻을 밝힌 것이다. GM과 LG는 앞으로 전기차 아키텍처 개발과 주요 부품 개발에 협력할 뿐만 아니라, 개발된 제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과정 또한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그간 전기차는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에 비해 출력이나 속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물론 전기차는 하이브리드차와 함께 중요한 미래 자동차로 손꼽히는 분야였지만, 현재 상태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을 형성할 정도의 품질을 갖춘 양산차가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기차가 시장에 안착까지는 20~30년까지도 내다본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학과 교수도 지난 5월 CNB저널을 통해 “연료전지차가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은 약 20년 전부터 있었지만, 아직도 ‘10년 후에나 그렇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며 “2020년 자동차 점유율을 예측한 자료를 보면 전기차 5%, 하이브리드차 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10%, 그리고 나머지 80%는 여전히 개선된 가솔린차와 디젤차가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GM과 LG의 전기차 공동 개발 협약으로 인해 업계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올해 상반기 판매실적 세계 1위라는 배경을 가진 GM이 다름 아닌 전기차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은 경쟁사들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 전기차에 주목하나 GM 측은 앞으로도 전기차 등 친환경차 분야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GM은 국내에서도 전기차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였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크루즈 전기차 시험모델을 개발해 G20 정상회의에 제공 했으며, 올해는 전기차 볼트를 한국시장에서 시험 운영했다. LG 또한 전기자동차 사업이 전세계적으로 저탄소 녹색성장 산업 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준호 LG 사장은 GM과의 협약식에서 “이번 GM과의 전기자동차 공동 개발 협약은 LG의 미래에 있어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며 GM의 전기자동차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이 GM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드자동차도 오는 2013년까지 북미지역 전체 생산 차량의 4분의 1 이상을 부분 또는 완전 전기차로 만들 방침이다. 현재 미국의 전기차 업체들은 2025년까지 갤런당 62마일에 달하는 성능을 가진 전기차 개발하려 노력 중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오는 2015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 보급할 것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동차 연비기준이 새롭게 바뀌어, 2025년까지 미국에서 운행되는 자동차 평균 연비가 54.5mpg(ℓ당 23.0km)로 높아진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친환경·고연비 차량 개발을 부추기고 있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연구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도 전기차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지난 5월 독일 정부는 앞으로 2년간 10억 유로(한화 약 1조5500억원)를 투입해 전기차 개발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동차를 처음 만든 독일이 전기차 분야에서도 시장 리더이자 선도적 공급자가 돼야 한다”면서 “배터리 성능과 충전 인프라 구축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미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이 “일반시장에 판매가 가능한 세계 최초의 양산 순수전기차”라고 소개하는 리프는 올해 유럽과 남미 시장에도 출시됐다. 회사 측은 리프의 올해 미국시장 판매 대수를 5만대로 목표하고 있다. 특히 리프는 5인승 해치백 모델로 최고시속 140km, 1충전 주행거리 160km를 구현하는 차량으로, GM의 쉐보레 볼트와 함께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연구소(IIHS)가 뽑은 가장 안전한 차량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전기차’ 지원 나섰다 지식경제부는 지난달부터 그린자동차 핵심 부품을 개발, 실용화 연구기반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일명 ‘그린전기자동차 개발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약 1493억원이 투입되며 2016년 7월까지 5년간 진행된다. 지난달에는 주관사업자로 울산지역 기업체와 R&D기관이 선정됐다.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하는 전기차의 1회 충전거리는 200㎞ 이상, 충전시간은 완속 기준 5시간 이하, 급속 기준 23분 이하이며 배터리 용량은 27kWh, 최고속도는 시속 145㎞다. 이를 위해 차량부품 개발 분야의 주관기업인 DH홀딩스 등 4개 업체는 전기자동차용 구동모터 개발, 고효율 엔진발전시스템 기술개발, 전기차 경량 복합소재 및 공정기술 개발, 전장부품 개발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기반 구축분야를 맡은 울산테크노파크는 울산 북구 매곡산업단지 일대에 그린카 기술센터를 설치하고 공동 연구용과 시험평가용 장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정부는 전기자동차 보급에 필요한 충전 인프라도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지난 6월 충전시스템 관련 KS 표준 3종을 고시했다. 기표원에 따르면 고시한 표준의 주된 내용은 주택과 주차장 등에 설치될 충전기의 전압·전류·전기적 안전성, 전기차와 충전기를 접속하기 위한 장치인 충전 커플러의 형상, 감전 보호 등이다. 올해 1월 충전 인프라 구축과 전기차 보급을 위한 KS 개발에 착수, 6개월간 공청회와 전문가 회의, 소비자단체 의견을 수렴한 결과였다. 국내 시장의 움직임 현대차는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된 전기차 블루온(BlueOn)을 공개했다. 블루온은 유럽 전략형 해치백 모델인 ‘i10’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전기차로, 현대차가 개발비로 400억원을 투입했다. 블루온은 전장 3585mm, 전폭 1595mm, 전고 1540mm의 크기에 효율 높은 전기모터와 16.4kWh의 전기차 전용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81마력, 최대토크는 21.4kg.m이며, 시속은 최대 130km까지 낼 수 있다. 현대차는 총 30대의 블루온을 지식경제부, 환경부 등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해 시범 운행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현대기아차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카에 더욱 집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 두가지 분야를 모두 주목해왔지만, 인프라 구축이 어려운 전기차가 국내 시장에서 일반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르노삼성은 내년 국내 시장에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 신임 사장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잠재력이 별로 없다는 러시아 시장에서조차도 전기차 적용에 대한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며 “전기차의 국내 도입 시기를 내년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르노는 닛산과의 합병체인 르노닛산을 통해 2013년까지 연간 50만대의 전기차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편 LS전선은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지난달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주유기 모양의 고정된 충전대를 사용해야 했던 기존 제품과 달리, 작은 크기로 휴대가 용이해졌다. 여기에 건물의 전원에 바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LS 관계자는 “지식경제부가 2020년까지 국내 승용차 시장 20%를 전기차로 바꾸기로 하는 등 앞으로 전기차 시장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제품으로 충전대 설치 비용을 절감하고 전기차 대중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기차의 가능성이 새롭게 점쳐지는 가운데,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의 환경차 전략이 어떻게 바뀔지 주목되고 있다.